술과 밥을 함께 할 형제 같은 친구는 1000명이나 되지만, 위급하고 어려울 때 기꺼이 돕는 친구는 한 명도 없더라(酒食兄第 千個有 急難之朋 一個無).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 이와 다른 한쌍의 친구가 있다. 학창시절 절친했던 두 사람 이야기다. 한 사람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다른 이는 과감하게 사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모두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다. 특히 사업가는 큰 성공을 거두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그 사업가가 가진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옆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친구를 제외하고는…
회사원이었던 그 친구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망한 친구의 재기를 돕기 위해 선뜻 자신이 가진 얼마의 돈을 내놨다. 그 돈을 바탕으로 절치부심 다시 사업을 시작한 사업가 친구는 10여 년이 지나 사업을 크게 성공시켰다.
그 사이 회사원 친구는 정리해고성 명예퇴직 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자 재기에 성공한 사업가 친구는 회사원 친구를 한국으로 초청해서 자신이 어려웠을 때 받은 돈의 몇 배를 내줬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정기적으로 회사원 친구에게 돈을 보낸다. 잘 아는 지인의 이야기다.
네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화우(花友)는 꽃이 피어 예쁠 때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나 꽃이 지면 돌아보는 이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는 꽃과 같은 친구이고, 칭우(秤友)는 저울이 무게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기울 듯 이익이 있나 없나를 따져 움직이는 저울 같은 친구를 말한다. 산우(山友)는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거나 가깝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기듯이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산과 같은 친구이고, 지우(地友)는 땅이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조건 없이 베풀어 주듯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해주는 땅과 같은 친구라고 한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루도 빠짐없이 40일 넘게 ‘친구 기다리는 중’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던 사람이 1년이 지나서 ‘친구 기다리는 중 完(완)’이라는 글을 올린 사연이 화제다.
작년 연말에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친구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매일 글을 올렸다. 이 사람의 간절한 기다림 덕분인지 친구는 사고 47일만에 깨어났다. 이날 병원복을 입은 채 침대에 앉아 있는 친구 사진과 함께 “친구가 깨어났다. 의사가 가망 없다는 말만 몇 번이나 했다. 다행히 뇌랑 척추, 목뼈는 다치지 않아 희망은 있었다. 친구가 횡설수설하면서 헛소리한다. 아직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고 적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지팡이를 짚긴 했지만 두 발로 평지를 걷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담겨 있는 친구의 영상과 함께 “불편하지만 잘 걸어 다닌다. 친구들 잘 만나고 다닌다. 감사하다”며 ‘친구 기다리는 중 完(완)’이라는 제목으로 친구의 최근 근황을 전했다.
델타와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창궐로 뒤숭숭한 2021년 연말이다. 친구 만나기도 쉽지 않다. 이런 때 조용히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친구의 모습일까’를 돌아보며 내년을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