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없어 구급차서 출산… “예견됐던 의료붕괴”

입력 2021-12-19 18:32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1025명으로 최다를 기록한 19일 오전 코로나19 전담 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 인천 남동소방서 구급차를 탄 코로나19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에 확진된 임신부가 병상이 없어 떠돌다 구급차 안에서 출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앞서 다른 코로나19 확진 임신부는 11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병상을 찾아 출산할 수 있었다. ‘병상 기근’이 심각해지면서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들마저 병상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9일 경기도 양주소방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0시 49분쯤 임신부가 하혈 증세와 함께 복통을 호소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코로나19 확진 판정 후 재택 치료 중이던 30대 임신부의 신고였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전담 병원에 있는 산부인과에만 입원이 가능했다.

소방서 측이 보건소 협조를 받아 병원 16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병상이 꽉 찼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 임신부의 진통은 더욱 심해졌다.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구급대원들은 결국 구급차에 비치된 분만 세트를 이용해 분만 작업에 돌입했다. 원격으로 소방의료팀 지도도 받았다. 아기는 오전 1시 36분쯤 구급차 안에서 무사히 태어났다. 현장 출동 소방관 중 한 명인 박은정 소방사는 간호사 특채로 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코로나19로 재택치료 중이던 임신부가 출산이 임박했음에도 전담병원 병상을 바로 구하지 못해 10시간 가량 거리를 헤매는 일도 있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13일 오후 9시 57분쯤 “하혈하고 있다”는 임신부 B씨의 신고가 들어왔다. 이날 B씨는 병상이 없어 2시간가량 구급차에서 대기하다 진통이 잦아진 뒤 귀가했다.

하지만 이튿날 오전 2시 35분쯤 B씨의 진통이 다시 시작됐다. 출동한 구급대원이 B씨를 다시 구급차에 태운 뒤 인근 병원 40여곳에 80통의 전화를 다급하게 돌렸지만 병상을 확보하지 못했다. 출산 임박 징조로 구급차 분만까지 고려하던 차에 다행히 오전 8시10분쯤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병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B씨는 첫 신고 후 11시간 만인 14일 오전 9시쯤 병원에 이송될 수 있었다.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로 병상 확보가 힘든 상황이 길어지면서 “예견됐던 일”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대한 안일한 대처가 곪아 터져서 의료 시스템 붕괴가 시작된 것”이라며 “병상 확보는 단기간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대비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를 위급 단계로 나눠 경증 환자의 병상을 위급 환자에게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