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업계를 향한 금융당국의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그간 핀테크는 금융 혁신을 이끄는 총아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난 8월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핀테크에 관한 언급은 ‘혁신 주체’에서 ‘규제 대상’으로 방점이 옮겨가고 있다. 작은 규제에도 크게 휘둘리는 핀테크 기업들은 금융당국의 메시지 변화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19일 핀테크 업계에 따르면 테크사들은 금융당국의 메시지 변화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는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하며 빅테크의 금융업 진입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기존 금융 규제가 오래되고 복잡해 혁신사업자의 진입이 곤란하다며 진입장벽을 낮추겠다고 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핀테크 시대의 도래로 포용금융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한다”는 문구도 담겼다.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해 9월 ‘디지털금융 협의회’를 창설하며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손 부위원장은 “국내 금융회사 보호만을 위해 디지털금융 혁신의 발목을 잡는 퇴행적 규제 강화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카드사들이 핀테크 업계에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반발할 정도로 신산업 육성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고 위원장 취임 이후 금융위의 메시지는 달라졌다. 고 위원장은 지난 15일 금융플랫폼 혁신 활성화 간담회에서 “대형 플랫폼에서 나타날 수 있는 데이터 독점·편향적 서비스 제공 등에 대해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에는 카카오페이, 토스 등에서 제공하던 금융상품 추천·권유 서비스가 전면 중단·축소됐다. 금융위가 이를 ‘단순 광고’가 아니라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중개 행위’로 규정하면서였다. 디지털금융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구성된 협의회는 지난 4월 7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잠정 중단됐다.
금융당국의 기류 변화에 민감한 핀테크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 중소형 핀테크사 관계자는 “고 위원장이 ‘테크’를 안 좋아하는 거 같다. 규제에 큰 영향을 받는 (테크)기업들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 대표이사인 류영준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회장은 지난달 “핀테크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드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금융당국은 업권별로 동일한 영업 행위를 똑같이 규제하는 ‘동일 기능·동일 규제’를 일관되게 추진해왔다고 강조한다. 테크사에 유독 엄격한 게 아니라는 뜻이지만 ‘핀테크에 역차별 받는다’는 기존 금융권의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고 위원장은 지난 17일 “디지털 혁신과 빅테크·핀테크 침투로 금융 산업의 새 판 짜기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균형 잡힌 대응을 강조했다.
디지털금융 협의회에 참석했던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 교수는 “규모가 큰 빅테크는 독점 등으로 시장 전체를 흔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은행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데 규제를 받지 않으면 모순이라는 것이 금융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