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가 치러졌지만, 그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홍콩 주민은 거의 없는 상태다. 홍콩 민주화 투쟁 이후 중국 정부가 ‘애국자가 다스리는 자치령 홍콩’을 기치로 선거제를 완전히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직선제로 뽑는 의석이 35석에서 20석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데다 입후보자 가운데 민주진영 후보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선거를 두고 “승패가 아니라 투표율, 유권자들의 백지투표 저항운동 여파가 최대 관심사”라며 “홍콩 사상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입법회는 사실상의 정부인 홍콩행정청을 감시·견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뽑힌 의원들은 ‘거수기’에 불과할 게 뻔하다. 민주화 시위 이후 케리 람 행정장관과 중국 정부의 ‘공모’로 만들어진 홍콩보안법상 민주진영의 유력 인사들은 피선거권 자체를 박탈당한 상태다.
유권자가 무려 450만명에 달하지만 민주진영은 선거에 입후보자를 내는 대신 주민들의 자발적인 무투표·백지투표 운동을 독려하는 것으로 저항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일찌감치 한달 전 “선거 보이콧이나 백지투표는 홍콩인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마지막 수단 중 하나”라는 내용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싣자 홍콩 정부가 강력 반발하기까지 했다.
홍콩 주민이 아니라 중국 지도부의 입맛에 맞춰진 이번 선거는 90명의 입법회 의원을 뽑는다. 시민들이 직접 뽑는 지역구 의원 20명, 간접선거로 뽑는 직능대표 의원 30명, 선거인단이 뽑는 의원 40명 등이다. 직능대표나 선거인단 선출 의원은 전부 친중 인사가 차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출마자만 훑어봐도 153명 가운데 친중·친정부 후보가 140여명, 스스로를 ‘중도성향’이라고 홍보한 후보가 10명 정도다.
민주진영은 선거제에 항의해 한 명도 후보를 내지 않았다. 민주진영 인사들은 대거 홍콩보안법으로 기소되거나 실형이 선고됐고, 일부는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홍콩 명보는 “이미 선거 열기는 사라졌다”고 전했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투표율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망했다. 여론조사기관 홍콩민의연구소의 청킴화 부총재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당선된다 해도 어떻게 홍콩 주민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5년 전 치러진 선거의 투표율은 58.3%로 사상 최고였다. 중국의 입김에 불만을 느낀 홍콩 젊은 층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현지 언론과 서방매체들은 투표 보이콧 여파로 이번 선거 투표율이 20~40%에 머물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백지투표 운동에 따른 무효표 규모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9월 치러진 마카오 의회 선거에서 백지투표가 4년 전 선거때보다 3배 이상 나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와 홍콩 행정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케리 람 행정장관은 “입법회 선거 투표율이 낮게 나온다면 그만큼 대중이 정부의 행정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NYT는 “홍콩 주민 다수의 불만 속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홍콩에 대한 베이징의 장악력만 더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라 하기엔 너무나도 이상한 선거”라고 꼬집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