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군이 아니었다면”…성추행 피해 여군, 생전 메모 공개

입력 2021-12-18 10:56 수정 2021-12-18 11:00
지난 10월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추모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월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은폐‧회유 시도 등의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의 고(故) 이예람 중사가 생전에 남긴 메모가 처음 공개됐다.

17일 MBC ‘뉴스데스크’는 이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장모 중사에게 군법원이 징역 9년을 선고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날 법정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 중사의 메모 내용을 보도했다.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다음날 작성했다는 메모에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힘이 듭니다” “내가 여군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남자였다면 선‧후임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라며 복잡한 심경을 표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내가) 왜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뼛속부터 분노가 치밉니다” “이 모든 질타와 비난의 가해자 몫인데, 왜 내가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지, 나는 사람들의 비난 어린 말들을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는 내용도 있었다.

해당 메모는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본 지 290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처음 열린 가해자 장 모 중사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날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이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등)로 구속기소 된 장 중사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추행으로 입은 정신적 상해가 결국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몬 주요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 10월 8일 군검찰은 장 중사에게 징역 15년형을 구형했지만 6년 형이 줄어든 것이다. 재판부가 기소 내용 중 장 중사가 이 중사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특가법상 보복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 중사는 지난 3월 초 후임 이 중사를 강제 추행했다. 이후 이 중사에게 “용서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표현했다. 이 중사는 부대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상급자들은 장 중사와의 합의를 종용하고 회유했고, 2차 가해에 시달린 이 중사는 결국 5월 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재판부는 “(해당 메시지는) 피고인의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사과의 의미를 강조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의 이후 선임‧남자친구와의 대화나 문자메시지에서 피고인의 자살을 우려하는 모습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유족 측은 강한 반발을 보였다. 이 중사의 어머니는 실신해 구급차로 후송됐고, 이 중사의 오빠는 “6개월 동안 재판을 했는데 지금 이렇게 나온 게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9년이 뭐냐”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유족 측 변호인은 “이미 국방부 수사심의위원회가 죄가 된다고 판단해 기소한 협박 혐의가 무죄로 나온 건 납득하기 어려운 만큼, 군 검사가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