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에 비해 미국 주식의 수익률이 더 쏠쏠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쌈짓돈을 싸들고 미국 시장으로 향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많은 개미들이 ‘미국 주식은 무조건 우상향“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만, 미국 증시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상향의 과정에는 최대 25년에 달하는 ‘조정기’가 수차례 있어온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1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주식투자자의 외화증권 투자 잔액은 올해 들어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118조6000억원)를 넘어섰다. 2016년까지만 해도 288억4000만달러에 불과했던 투자액이 5년여 만에 1021억3000만달러까지 3.5배 이상 불어났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계좌도 지난해 말 189만6121개에서 지난 10월 말 386만8203개로 지난 1년 새 배 이상 늘었다.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 1순위’ 국가는 미국이었다. 지난 16일 기준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은 658억2800만달러어치로, 전체 해외주식의 85.9%에 달했다.
미국 시장에 대한 압도적 선호도는 미국 증시가 끊임없이 우상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의 3대 지수인 다우존스 산업지수, 나스닥 종합지수, S&P500 지수의 차트를 살펴보면 모두 장기투자 관점에서 모범적인 ‘우상향식’ 성장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투자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미국 증시는 무조건 우상향한다” “미국 주식에 돈을 넣고 버티기만 하면 무조건 수익을 본다”는 등의 믿음이 기정사실처럼 퍼져 있다.
다만 문제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는 ‘조정기’다. 증시가 무한히 성장하기만 할 수는 없는 만큼 성장 과정에서 일정 기간은 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이 기간은 길면 수십년에 달할 수도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가령 중대형 우량주 위주의 S&P500 지수는 2000년 1527.46포인트의 신고점을 기록했으나 곧바로 닷컴버블 여파로 주저않으며 2007년까지 1500대를 회복하지 못했다. 2007년 가까스로 1565.15포인트를 기록한 직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증시를 덮치며 또다시 폭락, 2013년에 들어서야 전고점을 회복했다. 2000년에 처음 S&P 500에 투자한 이들은 2013년까지 무려 13년 넘게 미국 증시에 ‘물려있던’ 것이다. 1929년(31.86포인트) 대공황같은 경제위기 당시에는 1954년(35.98포인트)까지 무려 25년간 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하락과 횡보를 거듭했다.
성장주 위주의 나스닥도 장기간의 조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71년 도입된 나스닥 종합지수는 짧게는 3년(1983~1986년), 길게는 5년(1973~1978년)의 조정기를 거치며 성장, 2000년에는 5048.62포인트의 신고점을 경신했다. 하지만 이 직후 닷컴버블 사태가 터지며 나스닥은 2015년(5218.86포인트)에 들어서야 15년 만에 전고점을 회복했다.
미국 시장에 초장기 투자를 할 경우 쏠쏠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전문가들 대부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일반 투자자들이 길게는 수년에서 수십년에 달하는 조정기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 여부다. 특히 미국 증시는 지난해부터 팬데믹발 유동성을 흡수해 급격한 성장을 이뤄온 만큼, 하락폭도 얼마나 깊을지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유자금 내에서 투자한 이들을 제외한, 빚투·영끌로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이 하락·횡보장을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조바심을 내는 성격이라면 직접적으로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대신 간접투자를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퇴직연금을 확정기여형(DC)으로 전환해 미국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 외 55세에 도달한 시점부터만 수령이 가능한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나 연금저축 계좌를 개설해 미 증시에 투자하는 방법도 추천된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