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드래곤즈가 지난 9월 2021시즌 ‘오버워치 리그’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년 연속 정규 시즌 1위와 그랜드 파이널 진출, 상하이는 지난 2년 동안 리그 최고의 명문 팀으로 거듭났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상하이 사령탑 문병철 감독을 만났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팀 창단을 시작으로 e스포츠에 뛰어든 그가 오버워치 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사연, 축구의 게겐프레싱을 게임에 도입하고자 하는 그의 지도 철학 등을 들어봤다.
-어쩌다 e스포츠, 그중에서도 ‘오버워치’와 연을 맺었나.
“히어로즈 종목에서 활동했던 팀 ‘마이티’를 창단하면서 e스포츠에 처음 발을 들였다. 오버워치 출시 이후 마이티의 활동 종목을 늘리면서 오버워치와 연을 맺었다. 오버워치 리그 출범 후 LA 발리언트 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완전한 오버워치인(人)이 됐다.
사실 마이티 선수들을 오버워치 리그로 떠나보낸 뒤 계속해서 e스포츠 지도자 생활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마이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페이트’ 구판승, ‘카리브’ 박영서가 나를 발리언트에 감독으로 추천해 e스포츠와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발리언트에 약 1년간 머물렀다.
“보드진과 선수진이 나를 믿고 따라줘 부임 첫해 스테이지4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듬해 스테이지1에서 7연패를 당해 상호 합의 하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당시 메인 탱커였던 ‘쿠키’ 김대극의 포지션을 메인 힐러로 바꾼 뒤 ‘커스타’ 스콧 케네디 대신 내보냈다. 김대극의 기본기와 판 짜기 능력이 좋다고 봐 변화를 줬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김대극에겐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발리언트에서 나온 뒤 중국으로 향했다.
“발리언트에서 나온 후 2달 가까이 칩거하며 폐인처럼 살았다. 27살의 나이에 e스포츠에 뛰어들어 31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다. 첫 실패를 겪으니 수년간 응축됐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더라.
그러던 중 상하이의 아카데미 팀인 ‘팀 CC’가 내게 재기의 기회를 줬다. CC 선수들과 함께 오버워치 리그 입성을 목표로 열심히 달렸고,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하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상하이에 감독으로 부임한 뒤 팀에 많은 변화를 줬다.
“팀 구성을 많이 바꿨다. 코치진도 새로 꾸리고, 선수단에도 새로운 피를 많이 수혈했다. 나는 감독의 철학이 확실해야 팀도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리버풀의 게겐프레싱을 오버워치에 도입하고 싶었다. 쉴 새 없이 상대방을 압박해 전진을 저지하는 플레이를 구사하고 싶었다.
이 전술을 구현하기 위해선 서브 힐러, 서브 딜러, 서브 탱커의 게임 이해도가 높고 영웅 폭이 넓어야 했다. 앞라인과 뒷라인의 거리를 노련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했다. 전술적으로 잘 어울리고 담력도 센 ‘이자야키’ 김민철, ‘플레타’ 김병선, ‘보이드’ 강준우를 영입했다.”
-축구 전술을 오버워치에 도입한다는 얘기가 흥미롭다.
“오버워치는 축구와 닮은 면이 많다. 게임은 전쟁의 축소판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한쪽은 수성을, 다른 한쪽은 공성을 하는 게 기본 규칙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땅따먹기 싸움을 해 이겨야 한다. 어디를 틀어막아야 상대가 심한 압박감을 느낄지를 많이 연구했다. 우리 경기에선 상대 리스폰 지점까지 달려 나와 수비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상하이 전략은 선수 전원의 빠른 판단력이 핵심이다. 영웅들의 궁극기 보유 여부, 남은 시간, 화물 위치 등을 6인 모두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한타에서 패색이 짙어져도 끝까지 대항할 건지, 아니면 한 차례 후퇴해 전열을 재정비할 건지를 빠르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리언트 때와 마찬가지로 상하이에서도 첫 시즌부터 좋은 성적을 냈다.
“정규 시즌을 1위로 마무리했다. 토너먼트 대회에서도 두 차례 우승했다. 그러나 대망의 그랜드 파이널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메타 적응에 애를 먹었던 게 패인이었다. 그래도 정말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패배는 올해 더 절치부심한 계기가 됐다.”
-이후 2022시즌을 맞아 로스터에 변화를 줬다.
‘피어리스’ 이의석을 댈러스 퓨얼로 보내고 구판승을 데려왔다. 이의석은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해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였다. 두뇌 플레이와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구판승이 오면서 팀 컬러가 완전히 바뀌었다. 한동안 구판승도, 나머지 팀원들도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달가량이 지난 후에야 각자 제 기량이 나왔다.
-결국 숙원이었던 그랜드 파이널 우승을 이뤄냈다.
“‘볼솜트(레킹볼·솜브라·트레이서)’ 조합의 높은 숙련도가 우리의 우승 비결이었다. 우리는 이번 플레이오프 때 메타를 선도했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도 압도적이었다. 늘 겸손함을 유지하자는 마음가짐이지만, 이번만큼은 상하이가 다른 팀들을 압도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정말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그 결실을 본 것이다.”
-도전자에서 챔피언이 됐다. 내년에는 무엇을 목표로 삼을 예정인가.
“현재 스쿼드를 유지하는 게 상하이의 2022시즌 첫 번째 목표였는데 다행히 성공했다. 올해 우승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다음 시즌이 시작되면 다른 팀들과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는 도전자다. 선수들도 같은 생각으로 시즌을 준비했으면 한다. 방심과 자만 없이 2022시즌을 맞겠다.”
-2022시즌은 ‘오버워치2’로 진행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나.
“오버워치2는 탱커 자리가 하나 줄어든 5대5 게임이다. 그 여파로 서브 힐러의 중요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 다른 팀들도 식스맨을 서브 힐러로 두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더라. 물론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