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X는 올해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에 꼴찌를 기록했다. 2승16패를 거두는 데 그쳤다. 어느 팀보다 빠르게 스토브리그를 준비했다. 신성 ‘제카’ 김건우, 베테랑 ‘데프트’ 김혁규, ‘베릴’ 조건희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컨텐더 수준의 전력을 갖췄다.
최고난도의 스토브리그였다. 팀의 코어라 할 만한 선수 없이 리빌딩을 시작해야 했다. 이들은 어떻게 김건우, 김혁규, 조건희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DRX 사옥에서 최병훈 단장을 만나 이들의 스토브리그 뒷이야기를 들었다.
-서머 시즌에 꼴찌를 했다. 부진의 원인이 무엇이라 봤나.
“베테랑 선수의 부재다. 요즘 팀들이 나이가 어리고, 미래가 유망한 선수 위주로 영입하는 경향이 있다.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 활동했던 당시 자주 썼던 표현 중 하나가 ‘양산형’이었는데 최근 들어 기시감을 느낀다. 손이 좋은 선수는 많은데,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선수는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팀에 창의성을 불어넣어 줄 선수, 신인이지만 두뇌 플레이에 능한 선수를 영입하는 쪽으로 이적시장 방침을 세웠다.”
-스토브리그 준비를 다른 팀들보다 일찍 시작했을 듯하다.
“영입 리스트는 9월 중순부터 작성했다. 롤드컵에 출전 중인 선수부터 중국, 유럽 등지에서 활약해온 해외 선수까지 고려했다. 결과적으로는 무산됐지만, 중국인 선수와 미팅하기 위해 중국에 갈 채비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김건우를 영입 대상 1순위로 정했다. 그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운영 능력이나 라인전 능력, 챔피언 폭을 전부 고려해봤을 때 앞으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와 중국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정균, 김정수 감독에게 자문하기도 했다. 김건우가 중국에서 어떤 생활 태도를 보였는지, 연습 방향은 어떻게 설정했는지 등을 자세히 물어봤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김건우가 ‘킹겐’ 황성훈과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다. 황성훈은 우리 팀의 이상적인 선수상에 가장 근접해있다. 그와 비슷한 선수라면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 FA 시장에 나올 예정이었던 ‘쇼메이커’ 허수, ‘쵸비’ 정지훈 쪽으로 다른 팀들의 시선이 몰릴 것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올해는 롤드컵이 끝날 때까지도 이적시장의 향방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변수가 많이 나왔다. FA를 선언할 것 같았던 선수가 잔류하기도 했고, 잔류할 것 같았던 선수가 FA 시장에 나오기도 했다.”
-서포터로 조건희를 영입했다. 조건희가 이적시장에 나올 거로 예상했나.
“조건희의 영입 가능성을 50%로 점쳤다. 담원 기아가 올해 붙잡거나 새로 영입해야 할 포지션이 많아 조건희가 FA로 풀릴 수도 있다고 봤다. 만약 조건희가 시장에 나온다면 그에게 서포터 중 최고 수준의 대우를 제시해 데려올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조건희가 원거리 딜러로 활동했던 시절부터 탐냈다. 제2의 ‘테디’ 박진성이 될 거로 봤다. 그런데 갑자기 서포터로 포지션을 바꾸고 솔로 랭크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더라. 제2의 박진성이 아니라 제2의 ‘코어장전’ 조용인이 될 줄이야.(웃음) 똑똑한 선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똑똑하다.”
-조건희의 어떤 점을 높게 평가했나.
“조건희는 연습 과정에서 팀원들과 좋은 의미로 자주 다투는 선수다. 예전부터 그런 소문이 많았다. 나는 팀원들과 자주 싸우는 선수가 좋은 선수, 자주 싸우는 팀이 좋은 팀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감독 시절에도 선수끼리 가장 많이 다퉜을 때 성적이 제일 좋았다. 그래서 그가 팀원들과 의견 대립을 자주 하고, 게임에 대한 지식이 많다는 점을 높게 샀다.
두 번째로는 이 선수의 경험치에 주목했다. 조건희는 최근 2년간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 중 한 명이다. 2년간 선수가 출전할 수 있는 모든 대회와 경기에 다 나섰다. 대회의 결승까지 소화해본 선수의 경험치는 특별하다. 이 경험치를 다른 선수들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혁규의 DRX 리턴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어떻게 그의 마음을 잡았나.
“김혁규를 영입하는 게 이번 스토브리그 업무 중 가장 어려웠다. 나는 김혁규가 데뷔했을 때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 실현 가능성은 작았지만, SK텔레콤 T1 시절 그의 영입을 고려해보기도 했다. 그랬던 선수와 약 10년 만에 팀으로 만나게 된 만큼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새벽에 해가 뜰 때까지 김혁규와 대화를 나눴다.
조건희의 존재가 김혁규의 마음을 움직였다. KT 롤스터 시절 함께했던 황성훈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다. 김혁규는 내년이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해가 될 거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 부분에 의미를 부여했다. 개인적으로는 내년이 그의 마지막 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혁규에게도 원거리 딜러 포지션 최고 대우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수에게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혁규는 LoL e스포츠의 아이콘 중 하나다. 팀 내부에 끼치는 영향력이 남다르다. 축구 클럽에도 라커룸 리더가 있어야 팀의 사기 진작이나 분위기 전환이 이뤄진다고들 하지 않나. LCK에서는 김혁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다. 그의 선한 영향력에 걸맞게 대우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DRX는 어떤 게임을 추구하고자 하나.
“속도감 있는 게임을 추구하려 한다. 게임 외적인 면을 놓고 보자면 로스터의 신구조화가 만족스럽다.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끼리 모여 좋은 플레이를 펼치고, 시너지를 내는 건 꿈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각자 다른 세대 선수가 모여 신뢰와 팀워크를 갖추는 게 이상적이라 본다. 현재 로스터 구성이 그런 측면에서 마음에 든다.”
-올해 스토브리그는 팀들이 유독 어려움을 호소한 듯하다. 어떤 특징이 있었나.
“작년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작년에는 선수들이 연봉보다 우승에 가중치를 뒀다. 함께할 팀원을 보고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올해는 연봉과 멤버 구성, 두 가지의 비중을 비슷하게 두더라. 두 가지를 조율하며 선수를 영입하려다 보니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마 DRX 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2022년 DRX의 목표는 무엇인가.
“돌고 돌아 ‘담젠티’라고들 하지 않나. LCK 내에서 강팀으로 분류되는 담원 기아, 젠지, T1을 이기고, 그들과 동일 선상에 서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플레이오프 진출보다 높은 성적을 목표로 해도 된다고 보고 있다. 선수들의 잠재력만 터진다면 리그 우승도 노려볼 만하다. 내년에 가장 많은 대회,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르는 팀이 됐으면 한다.”
-끝으로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새로운 DRX란 느낌을 팬들께 드리고 싶다. 아예 리브랜딩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선수들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팬들께서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올해 부진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내년엔 성적으로 감사를 표현하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