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 지역을 시작으로 수도권의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와 마포·서대문·은평구는 물론 경기도 화성, 동두천에서도 실거래가가 수억원씩 폭락하며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영끌족’들은 연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정부가 연일 강조해온 ‘집값 고점론’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한국부동산원의 ‘공동주택 실거래가 지수’ 통계에 따르면 10월 기준 서울 아파트값 실거래 지수는 전월(179.8) 대비 0.42% 상승한 180.6을 기록했다. 지수 자체는 올랐으나 상승폭은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10월중 상승폭은 지난 3월(0.27%) 이후 7개월 만에 최저치다.
서울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과 서북권(마포·서대문·은평구)의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하락이 전체 상승폭 축소를 견인했다. 직전 달 대비 각각 0.03%, 0.5% 하락했다. 이 지역들의 실거래가 지수에서 하락세가 관측된 건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이다.
실제 서울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전용면적 84㎡의 경우 12층 매물이 지난달 중순 18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10월까지만 해도 같은 동, 같은 크기의 윗집 매물이 20억원에 팔렸는데 한 달여 만에 1억5000만원 급락한 것이다. 송파구와 마포구에서도 직전 최고가보다 1~2억원 내린 가격에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는 최고가 26억2000만원에서 2억원 가까이 내린 24억5000만원에 팔렸고, 마포구 현석동 ‘래미안웰스트림’ 전용 59㎡ 실거래가도 10월 17억원에서 지난달 14억8000만원으로 하락했다.
경기도도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경기도는 10주 연속 실거래가 지수 상승폭이 축소되며 10월 초 0.41%였던 상승률이 이번주 조사에서는 0.11%로 4분의1토막 났다.
특히 화성시 아파트값은 지난주 0.11%에서 이번주에는 –0.02%로 하락 전환했다. 동두천시도 지난주 0.01%에서 이번주 –0.03%로 내렸다. 지난주 0.05% 올랐던 하남시는 이번주 보합 수준에서 마무리되며 체면치레에 간신히 성공했다.
화성시와 동두천시의 아파트값이 하락한 것은 각각 2년1개월, 1년2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두 지역은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인식과 광역급행철도(GTX)가 도입된다는 소식이 맞물리며 올해 들어 가격이 급등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급격히 상승한 부동산값이 긴 조정 기간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며 ‘상투’를 잡은 집 주인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난 6월부터 꾸준히 강조해온 ‘집값 고점론’을 무시하고 집을 구매한 결과가 이제야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집값 하락세에 더해 이제까지 제로금리 수준으로 유지돼왔던 기준금리·대출금리가 본격적으로 정상화되면 영끌족은 집값 폭락과 이자 부담 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된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제2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서울 아파트 가격(실질가격 기준)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정을 받기 이전 고점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그 이후 그는 이달까지도 ‘집값 고점론’과 ‘투자 신중론’을 주장해왔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