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오류 소송’ 로펌에 3000만원 준 평가원…“예산낭비”

입력 2021-12-16 17:56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정답 결정 취소 소송 선고 결과와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강 원장은 이날 사퇴의사를 밝혔다. 연합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출제오류 관련 소송을 위해 로펌에 약 30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원이 문항 오류를 조기에 인정하지 않고 대형 로펌을 선임하고 수임료를 지급하면서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16일 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평가원은 생명과학Ⅱ 응시생들이 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 소송과 관련해 법무법인 지평에 총 3080만원을 지급했다.

정답 효력정지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착수금으로 880만원, 본안 소송 착수금으로 2200만원이 지출됐다. 평가원은 집행정지와 본안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착수금 만큼의 액수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두 건 모두 패소하면서 성공보수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평가원은 지난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오류 문항으로 피해를 본 학생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법무법인 지평에 총 5830만원을 착수금으로 지급했다.

2017년 2심 재판부는 평가원과 국가가 수능문제 출제오류와 구제절차 지연으로 대입 당락에 영향을 받은 42명에게는 한 사람당 1000만원을, 당락에 영향을 받지 않은 수험생 52명에게는 각각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평가원은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1~3심을 거치는 동안 착수금은 각각 1650만원, 2200만원, 1980만원이었다.

평가원은 두 소송의 수행 비용은 수능 사업비에서 지출됐다고 밝혔다. 수능 사업비의 올해 예산은 621억8103만원이 편성돼 있다. 재원은 수험생들이 원서 접수시 내는 응시 수수료, 교육부 특별교부금 등이다.

김 의원은 결국 평가원이 수험생을 상대로 한 소송에 수험생 돈을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평가원의 직무유기와 고집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이 지급됐다”며 “정부법무공단 등 보다 저렴한 법률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음에도 대형 로펌을 선임해 더 큰 비용이 나가게 됐다. 중요한 예산을 낭비한 셈”이라고 말했다.

평가원은 앞서 문항 오류 지적이 이어지는데도 ‘정답을 결정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일 집행정지 신청에서 수험생들 손을 들어줬다. 이후 평가원은 지난 10일 생명과학Ⅱ 응시생 6515명에게 배부한 성적표에서 해당 과목은 공란으로 제공했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어 지난 15일 본안 소송 판결에서 ‘문항에 오류가 명백하다’면서 재차 수험생들 손을 들어줬다. 평가원은 문항의 오류를 조기에 인정하지 않고 대입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