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여대생을 뺑소니로 숨지게 만든 30대 운전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대전지법 형사7단독 김지영 판사는 1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주치사)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38)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0월 7일 오전 1시30분쯤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몰다가 대전 서구의 한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행인 2명을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고로 20대 여대생 B씨가 머리를 크게 다쳐 숨지고, 함께 길을 건너던 30대 남성 C씨도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한 B씨는 가족과 떨어져 대전에서 혼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도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 귀가하던 길이었다.
당시 A씨는 정지 신호를 위반한 채 시속 75㎞의 속도로 계속해서 직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현장은 인근에 초등학교·중학교가 위치해 제한속도가 30㎞ 이하인 어린이 보호구역이었다. 그는 사고를 낸 뒤 차량을 4㎞정도 더 몰고 가 인도 가로수를 들이받고서야 차량을 멈췄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A씨가 혈중 알코올농도 0.204%의 만취상태였음에도 운전대를 잡은 점, 주의 의무를 위반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점, 사고를 내고 달아난 점 등에 비춰볼 때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단속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 0.204%였을 뿐 아니라 말도 횡설수설했으며 보행도 올바르지 않았다”며 “현장은 어린이 보호구역이고 주택가·상가와도 밀접해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시속 75㎞를 초과해 운전하고 정지신호까지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충격 이후에도 그대로 현장을 이탈, 다수의 차량이 다니는 곳에 피해자들을 방치해 2차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며 “정차한 뒤에는 블랙박스를 제거하고 차량에서 빠져나왔다. 규범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들과 합의를 못하고 유족들이 엄벌을 원하는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B씨 유족과 C씨에게 용서받거나 합의를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했다”며 “유족의 고통은 판결문에 어떠한 표현으로도 담을 수 없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동종범행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B씨의 어머니는 재판 종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형량이 만족스럽지 않다.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다”며 “피고인은 우리에게 전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이 합의하겠다고 했는데 합의는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그 조건이 돈은 아니다. 난 똑같이 죽이고 똑같이 11년형을 살고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B씨 어머니는 항소 여부는 추후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항소 여부는 잘 모르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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