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 유수혁은 알려진 것 이상으로 많은 강점을 가진 미드라이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플레이에 빈틈이 없다.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인 그는 게임 내에서 팀의 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로 알려졌다.
지난 2년간 리브 샌드박스에서 출중한 활약을 펼쳤던 그는 올해 11월, LCK 데뷔 후 처음으로 자유계약(FA) 시장에 나왔다. 그리고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했다. 15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그가 FA를 선언했던 이유, 새 둥지로 아프리카를 고르기까지의 과정, 새 시즌에 임하는 각오 등을 들어봤다.
-지난달, 리브 샌박과 재계약을 맺지 않고 이적시장에 나왔다.
“나는 챌린저스에서 데뷔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LCK에 발을 들였다. 이번이 데뷔 후 처음으로 맞는 이적시장이었다. 팀 외부에서 나를 어떤 선수로 평가하는지, 또 나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매기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올해가 적기라고 생각해 FA를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유 선수의 해외 진출을 점치기도 했다.
“주로 LCK와 LPL 팀들이 내게 오퍼를 보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지역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최우선으로 둔 가치는 성적이었다. 고민 끝에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이 팀에 믿음직한 선수들이 여럿 있다. 여기라면 나도, 팀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로 봤다.”
-입단 전부터 팀원들을 좋게 평가했나.
“‘기인’ 김기인은 ‘육각형 탑’의 표본 같은 선수다. 예전에 한 팀원과 농담처럼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쯤은 기인이랑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평소에도 뛰어난 선수로 평가해왔다.
고등학생 시절 ‘엘림’ 최엘림과 함께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성격이 서글서글한 친구다. 나이도 같아 편하게 소통하며 둘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로 봤다. T1에서 충분한 출전 기회를 보장받진 못했지만, 막상 경기에 나서면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리브 샌박에서는 에이스이자 살림꾼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다른 역할을 맡을까.
“분명 역할이 다를 것이다. 리브 샌박에서 나의 역할을 정의하면 ‘저투자 고효율’이었다. 시팅을 적게 받고, 빠른 상황 이해도를 토대로 팀원의 이득을 추구했다. 아프리카에선 더 다양한 롤을 수행해보려 한다.
이타적인 플레이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이젠 이기적인 플레이도 해보려 한다. 예를 들면 리브 샌박에선 빠르게 라인을 푸시하고 팀원을 도와주곤 했다. 지금은 내가 교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쉬운 라인을 형성해놓는다.”
-2022시즌의 아프리카는 어떤 팀이 될 거로 보나.
“공격적인 팀, 초반 리드를 선호하는 팀이 될 거로 본다. 팀원들이 대체로 그런 플레이를 즐긴다. 개인적으로는 파밍 위주의 게임이든, 빠른 템포 게임이든 상관없다. 조합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추구하겠다.”
-스프링 시즌엔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 거로 예상하나.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 보니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각자 다른 팀에 오래 몸담아와서 그런지 선수마다 전술적인 색깔이 확연히 다르더라. 게임을 하면서 의견이 갈릴 때가 간혹 있다. 그래도 호흡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우선 스프링 시즌엔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하고, 서머 시즌 때 정말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성적 외에 개인적으로 목표로 삼는 바가 있나.
“실수하지 않고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플레이를 펼치는 게 나만의 목표다. 팀에 김기인이나 박진성처럼 뛰어난 딜러진이 있다. 그들을 받쳐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도 돋보이는 선수가 되고 싶다. 올해 저에 대해 좋게 평가해주신 분들이 많았지만, 퍼포먼스 측면에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년엔 그런 부분도 채워나가고 싶다.”
-최근 팀들이 리빌딩을 마치고, 스크림에 들어갔다. 견제되는 팀 또는 주목하는 선수가 있나.
“특정 팀을 견제하진 않는다. 내년 우리 성적은 우리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젠지가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궁금하긴 하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빼어난데, 호흡이 맞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의 폭발력이 나올지 궁금하다. 나는 ‘쵸비’ 정지훈을 정말 높게 평가하는데, 이번 시즌은 메타도 그와 잘 맞는 것 같아 활약이 기대된다.”
-반드시 이기고 싶은 팀도 없나.
“리브 샌박에 오래 머물렀던 만큼 그곳 팀원들과 친했다. 그래서 그런지 ‘크로코’ 김동범이 그대로 있고 ‘도브’ 김재연까지 돌아온 리브 샌박, ‘온플릭’ 김장겸이 있는 한화생명e스포츠를 이기고 싶다. 아마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리그의 미드라이너 라인업이 두텁다. 10개 팀 선수 중 본인만이 가진 무기는 무엇일까.
“유연성이다. 플레이스타일이든, 챔피언 폭이든, 무엇이든 유연하게 대처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있다. 올 1년을 보내며 게임을 읽는 능력, 라인 관리 노하우 등이 늘었다. 보완해야 할 점으로는 라인전을 꼽고 싶다. 더 빡빡하게 라인전을 해나가야 이 리그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운영 능력이 탁월한 선수로 꼽힌다. 게임을 읽는 눈은 타고 나는 능력으로 보나.
“경험상 배움에 비례한다고 느낀다. 생각하기를 반복하면 운영 능력이 향상된다. 그런데 최근엔 이 역시 재능의 영역 아닌가 싶기도 하다. 피지컬을 타고나는 선수가 있듯, 운영 능력도 타고나는 것 아닌가 싶더라.”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