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60)는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한국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주요 극장 무대에 서는 한편 영화 ‘유스’와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를 부르는 등 다양한 음악 작업을 해 왔다. 덕분에 이탈리아 정부가 수여하는 성악계 최고 영예인 ‘황금 기러기상’을 받는 등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은 조수미가 창단 7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실내악단 ‘이 무지치(I Musici di Roma)’와 함께 바로크 앨범 ‘Lux. 3570’를 발매했다. 이 무지치는 비발디의 ‘사계’를 가장 사랑받는 클래식 레퍼토리로 만들며 지금까지 판매된 음반만 2억 장이 넘는 전설적인 실내악단이다.
조수미는 이 무지치와 함께 18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19일 세종예술의전당, 22일 음성문화예술회관, 23일 성남아트센터, 25~26일 서울 예술의전당, 27일 천안예술의전당, 28일 익산예술의전당, 30일 아트센터인천 등 8개 도시에서 3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조수미와 이 무지치는 당초 11일부터 전국 투어를 돌 예정이었으나 국내에서 지난 3일 자가격리(10일)가 다시 의무화 되면서 스케줄을 재조정 했다. 조수미와 이 무지치는 지난 7일 입국해 현재 자가격리 중이다. 전국 투어를 앞둔 조수미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올해 35주년을 맞아 오디오북, 음반과 공연 등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요. 이 가운데 유럽 투어는 코로나19 여파로 일부 취소되고, 이제 이 무지치와 한국 공연만 남긴 상태입니다. 올 한해를 돌아본 소감을 이야기 해주세요.
- 2021년은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아요. 이 무지치와 앨범을 만들거나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좋은 일도 많았던 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거나 유럽 공연이 취소되는 등 슬픈 일도 많았어요.
◇이 무지치와 35주년 기념 음반을 내게 된 계기나 과정을 알려 주십시오.
- 저와 이 무지치는 이탈리아 로마를 베이스로 하는 아티스트잖아요. 그런데, 로마에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RADIO TAXI 3570’라는 이름의 콜택시가 있어요. 평소 알고 지낸 이 무지치 단원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콜택시 이름 안에 우리의 35주년, 70주년이 들어있다며 웃었어요. 그러면서 ‘기념 앨범을 내면 어떨까’ 농담처럼 시작한 것이 실제 작업으로 이어졌죠. 다만 음반 녹음 과정은 코로나19 때문에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무지치 단원이나 가족의 감염으로 녹음 스케줄이 3~4번 바뀌는 등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리고 취소될 때마다 불안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음반을 만들어서 기뻐요.
◇콘서트에서 매번 관중의 환호를 이끌어냅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
- 무대에 설 때마다 연애하는 느낌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설레면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잖아요. 제 경우 콘서트를 위해 음악적인 준비 외에 약간은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도 신경 씁니다. 많은 분들이 공연장을 떠날 때 즐거울 수 있도록요. 요즘은 예술도 즐겁고 재미있어야 되거든요. 전 어릴 때부터 그런 끼가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아요. 마치 우리 집의 파티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안주인의 느낌 아닐까 싶어요.
◇지난 9월부터 예술의전당이 상설 운영하는 홀로그램 콘서트에 나오고 계시는데요. 이런 홀로그램 콘서트를 수락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대에 서는 성악가 입장에서 부담은 없으셨나요?
- 홀로그램은 앞으로 계속될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타계한 가수들의 홀로그램 콘서트는 많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저처럼 살아있는 아티스트의 홀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끌렸어요. 요즘 같은 팬데믹 시기에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이런 홀로그램 콘서트는 좋지 않나요? 다만 아직 제가 나오는 홀로그램 콘서트를 못 봤어요. 격리가 끝나면 예술의전당에 가서 보려고 해요. 앞으로도 다른 홀로그램 기회가 있으면 더 하고 싶어요.
◇타계한 어머님은 딸이 성악가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분인데요. 어머님의 별세 이후 심경의 변화가 있으신지요?
- 어머니가 8월에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못 지켰어요. (2006년) 아버지의 임종도 못 지켰는데요. 제가 성악가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저는 알고 있었어요. 제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중요한 시간에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요. 부모님 임종만이 아니라 동생들의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했죠. 제가 지난 5월 한국에 있을 때 아프신 어머니를 뵌 적 있는데, 그때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도 몸만 떠나는 거지, 그 영혼은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기도할 때 어머니가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하신다고 믿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를 위한 앨범과 공연을 헌정한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성악가로서 무대에 열정을 쏟았다면 앞으로는 후학 양성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 있는데요. 그 일환으로 마스터 클래스에 대해 열정이 큰 듯 합니다.
- 후학 양성은 제가 요즘 많이 생각하는 문제인데요. 예전에 마스터 클래스를 처음 요청받았을 때 걱정됐지만, 제가 쇼맨십이 있어서 그런지 반응이 좋았어요. 그동안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과 영국 위그모어홀 등 다양한 곳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는데, 저 역시 젊은 성악도들을 가르치는 게 재밌더라구요. 성악도가 전문적인 오페라 가수나 콘서트 보컬리스트의 길을 가려고 할 때 기량이나 연습 외에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요. 학교 수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선배 성악가의 경험이 도움 됩니다. 저는 성악도 한 명 한 명 맞춤형으로 가르치는데, 제가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시간 날 때마다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내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 석학 교수로 임용돼 내년 1학기부터 학부생·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하게 됐는데요. 이것 역시 후학 양성의 일환인가요?
- 사실 KAIST 학장님의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성악 자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게 의미있어서 승낙 했어요. 저의 무대 경험이나 음악에 대한 지식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위한 것인데, 음악적 소양이나 예술적 감수성을 가진 과학자가 제대로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23년 프랑스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딴 성악 콩쿠르(Sumi Jo International Singing Competition in Castle)도 창설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는데요. 현재 준비과정은 어떤가요?
- 제 이름을 붙인 콩쿠르인만큼 준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센세이셔널한’ 콩쿠르로 만들고 싶어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