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오는 18일 국민투표에 부치는 4개 안건 중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과 밀착해 반중 노선을 걷고 있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지난해 야당 반대에도 수입을 강행했는데, 투표 결과에 따라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은 내년 지방선거와 2024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만 TVBS 방송은 지난 1~6일 18세 이상 성인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찬성은 55%, 반대는 33%로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대만 집권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 지지자 중 수입 금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33%에 그친 반면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 지지층에선 83%가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도층에선 55%가 찬성 의견을 냈다. 락토파민은 동물 사료에 사용되는 성장촉진제다.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은 먹거리 안전 문제이자 대미 관계와도 직결된 사안이다. 차이 총통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수입을 밀어붙인 만큼 이번 국민투표에서 수입 금지 안건이 통과되면 정치적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차이잉원 정부는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중단하면 미국과 대만의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만은 같은 날 제4원전 상업 운전 개시, 국민투표일과 전국 선거 연계, 북부 타오위안의 조초(산호의 한 종류) 해안에 건설 중인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이전에 대해서도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TVBS 조사에서 제4원전 상업 운전 개시는 찬성 46%, 반대 42%로 나타났다. 국민투표일과 대선 연계의 경우 찬성 53%, 반대 35%로 조사됐다. LNG 시설 이전에 대해서도 찬성(39%) 의견이 반대(35%)보다 많았다. 차이잉원 정부와 민진당은 ‘4개 부동의’(四個不同意) 슬로건을 내걸고 모든 안건에 반대 투표할 것을 독려하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선 찬성 응답이 전부 높게 나타난 것이다.
원전 가동은 차이잉원 정부의 탈원전 정책 지속 여부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대만 제4원전은 2014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건설이 중단됐다. 차이잉원 정부는 2025년을 목표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번에 제4원전 가동이 결정되면 탈원전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번 국민투표가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로 여겨지는 이유다.
대만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1.5%(약 28만명)의 서명만 확보하면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국민투표 결과 찬성 유권자가 반대 유권자보다 많고, 찬성 유권자가 전체 등록 유권자(약 2000만명)의 4분의 1을 넘기면 해당 안건은 통과된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