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2년차 ‘합창’ 교향곡, 올해도 마스크 쓰지만 대면 공연

입력 2021-12-14 05:58 수정 2021-12-14 13:45
서울시향은 지난해 롯데콘서트홀에서 연 '합창' 교향곡을 비대면 중계 했다. (c)서울시향

베토벤의 교향곡인 9번 ‘합창’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교향곡에 처음으로 성악이 나오는 작품이다. 4악장에 4명의 독창과 합창이 나오며,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서 가사를 가져왔다. 원래는 작품 제목이 따로 없었지만 4악장 때문에 ‘합창’이란 별칭을 가지게 됐다.

1824년 2월 완성돼 그해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합창’ 교향곡은 당시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초연 이후 베토벤 생전에 이 작품이 연주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작품의 난이도가 높은 것과 함께 필요한 인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후대 연구에 따르면 초연 당시 출연인원은 오케스트라 80~90명, 합창단 80명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베토벤 사후 오케스트라의 기량이 발전하면서 ‘합창’ 교향곡 연주가 많아졌다. 특히 20세기 들어 세계 곳곳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상징성이 큰 기념행사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이런 기념행사에서는 합창단의 규모를 수백 명으로 늘리기도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연말에 ‘합창’ 교향곡 연주가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는 아마추어 참가자들로 대규모 합창단을 꾸리기도 한다. 5000명이 나오는 도쿄 국기원 공연과 1만 명이 나오는 오사카성 공연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합창’ 교향곡이 초연된 것은 1948년 11월 서울교향악단 창단 1주년 기념공연에서다. 연주자와 합창단 등 300명이 출연했는데, 한국의 열악한 클래식계 상황을 고려하면 대단한 시도였다. 당시 참가자들은 1년 동안 틈틈이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출연 인원이 워낙 많은 탓에 초연 이후엔 드문드문 연주됐다.

그러다가 국내에서 ‘합창’ 교향곡 붐이 일어난 것은 2000년대 들어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이끌던 서울시향의 공이 크다. 서울시향은 2008년 12월 ‘합창’ 교향곡을 선보여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후 매년 12월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국내 오케스트라들 역시 앞다퉈 연말 레퍼토리로 연주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은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많은 공연이 취소됐다. 연말 단골 레퍼토리였던 ‘합창’ 교향곡의 경우 서울시향만 12월 20일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전통을 이어갔다. 다만 서울시향도 핀란드 출신 작곡가 야코 쿠시스토에게 편곡을 의뢰해 이 장대한 작품을 실내악으로 축소했다. 그래서 지휘자를 빼고 2019년 합창단 124명, 솔로이스트 4명, 오케스트라 84명 등 212명이었던 출연진은 지난해 합창단 24명, 솔로이스트 4명, 오케스트라 35명 등 63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특히 지난해 서울시향 공연은 솔로이스트와 합창단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노래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팬데믹 이후 오케스트라에서 관악을 제외한 연주자나 지휘자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공연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 됐지만 성악가까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노래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출연진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통해 전원 음성 판정을 받은 데다 무관중 공연이라 전파 우려도 적었지만 “모두와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서울시향의 ‘합창’ 교향곡 온라인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접속이 이어지면서 동시 시청자가 5,700명(유튜브 기준)을 넘어서기도 했다. 당시 접속창을 통해 관객들은 “내년에는 꼭 마스크 없이 노래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움 섞인 박수를 보냈다.

팬데믹 이전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올해 12월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는 베토벤 ‘합창’ 교향곡 대면 공연에 나섰다. 서울에서는 서울시향이 16~17일, KBS 교향악단이 24일 각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합창’을 선보인다. 두 공연 모두 합창단의 규모를 다소 줄이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무대에 선다.

서울시향은 16~17일 공연에서 102명의 합창단이 무대에 선다. 소프라노 캐슬린 김,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박승주, 베이스 심기환이 솔리스트로 함께 한다. 지난해엔 솔로이스트도 마스크를 낀 채 합창석에 섰으나 올해는 예전대로 오케스트라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노래한다. 그리고 지휘는 핀란드 출신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자가격리 면제 중단 조치로 내한을 못 하게 되면서 홍콩 출신의 수석 부지휘자 윌슨 응으로 변경됐다. 서울시향은 18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합창’ 교향곡을 한 차례 더 연주한다.

KBS 교향악단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건너 뛰었던 ‘합창’ 교향곡을 2년 만에 선보인다. 24일 공연에는 오케스트라 70여명과 함께 합창단 84명이 출연한다. 합창단은 예년의 120명에서 1/3 가까이 규모를 줄인 것이다. 소프라노 이윤정,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김우경, 베이스 김기훈이 솔로이스트로 나온다. 내년 1월 정식 취임하는 신임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은 취임 전에 먼저 ‘합창’ 교향곡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자가격리 면제 중단 조치로 내한이 불투명하다. KBS 교향악단은 잉키넨의 내한이 불발될 경우 새 지휘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