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신변보호 여성 가족을 살해한 이모(26)씨가 범행 나흘 전 피해 가족의 첫 신고 때 귀가 조치했던 것에 대해 “당시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피의자가 당시 임의동행에 응했고 휴대전화 임의제출도 순순히 했다”며 “주거지나 전화번호 등도 확보했고 체포 영장을 받기 위한 긴급성이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상황에서 이씨를 긴급 체포했다면 불법 체포가 됐었을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경찰은 이어 “현행범 체포를 하려고 하면 범행 중에 바로 체포해야 하기 때문에 한참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는 현행범 체포 요건도 아니고 긴급체포 요건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빌라에 있는 A씨(21) 주거지를 찾아가 A씨 어머니(49)와 남동생(13)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A씨 어머니는 숨졌고 남동생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당시 집에 없었다.
사건 발생 4일 전인 지난 6일 A씨 아버지는 딸이 감금된 것 같다며 서울 강남 지역에서 경찰에 첫 신고를 했다. 당시 딸의 위치는 충남 천안으로 잡혔지만 그곳에 없었다. 이후 딸과 이씨는 대구에서 발견됐다.
A씨 가족은 이씨를 성폭행과 감금 등으로 신고해 이씨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현행범 또는 긴급 체포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경찰 판단에 귀가 조치됐다.
A씨는 지난 7일 신변보호 대상으로 등록돼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 경찰은 당시 신변 보호 대상을 가족까지 확장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첫 신고 나흘 만인 지난 10일 A씨 주거지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이씨에 대한 긴급체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긴급체포를 잘못하면 직권남용 등에 걸린 사례가 많다. 긴급성, 상당성, 중대성 등 요건에 해당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퍼즐을 맞춰보니 이런 상황이 있었다. 그때 (신병확보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부분도 있으나 당시에 대구에서 판단했을 때는 요건이 안 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가 피해 가족 집주소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 추가 조사 중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희생된 국민에 명복을 빌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피해자 가족과 피해자가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게 경찰의 기본 사명인데, 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국민께 걱정과 불안을 드린 점에 대해 항상 송구하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신변보호 제도 등과 관련한 예산, 인력, 법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도 호소했다. 김 청장은 “스토킹처벌법도 마찬가지고 현행 법제로는 경찰이 가해자를 사건 발생 초기에 조치할 수단이 정말 제한돼있다”며 “이번처럼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접근금지도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전날 서울동부지법은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열고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지난달에는 스토킹 피해를 신고해 신변 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30대 남성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