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헌신한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이 12일 오후 11시 55분 별세했다. 향년 101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지난 1988년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하고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 할머니가 오랜 투병 끝에 순천 모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13일 밝혔다.
이 초대회장은 결혼한 지 2년 만인 1942년 11월 남편을 해군 군속으로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다.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소식이 끊어진 남편은 3년 뒤인 1945년 4월 전사통지서를 통해 마지막 소식을 전해왔다.
억울함과 분노를 떨치지 못한 이 회장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1988년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를 앞장서 결성하고 30년 넘는 기간 동안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법적 소송 등을 벌여왔다.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소송을 시작으로 '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사건' '일본군 위안부·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원고로 참여한 관부재판'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이 제기한 근로정신대 손해배상소송' 등 7건의 주요 대일소송을 주도했다.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은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지만, 2012년 광주지법 소 제기를 시작으로 지난해 11월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또 한일협정문서 전면공개, 특별법 제정, 정부 진상규명위원회 발족, 일제 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피해자 조사 실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설립 등의 성과를 이끌었다.
고인은 일제 피해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지난 201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서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이며 모란장은 5등급 중 무궁화장에 이어 2번째로 등급이 높다.
지병으로 활동이 불편해진 고인은 2015년 손녀가 있는 순천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외롭게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이다. 오는 15일 발인을 마치고 순천시립공원묘지에 안장된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평생 동안 힘든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