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용? 재활용? 전기차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의 세계’

입력 2021-12-14 07:23
전기차 배터리 그래픽. 국민일보DB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 우려도 커진다. 휘발유, 경유로 움직이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전기차는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를 필수로 한다. 전기차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초기 대비 70~80% 수준으로 용량이 떨어지면 교체해야 한다. 수명은 약 5~10년 정도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다 쓰고 난 배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폐배터리는 오히려 ‘노다지’다. 갈수록 가격이 뛰는 희귀금속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폐배터리의 ‘리사이클링’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도 빠른 속도로 확대할 전망이다.

재활용, 재사용… 기업들 잇따라 진출

전기차 폐배터리를 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재활용(recycling)’과 ‘재사용(reuse)’으로 나뉜다. 배터리 재사용은 폐배터리를 재정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기차에 사용하는 고용량의 배터리는 많은 양의 전기 에너지를 저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ESS와 비슷하다. 전기차 배터리 가운데 충전 능력 70% 정도를 유지하는 폐배터리는 ESS로 재사용 가능하다.

재활용은 재사용과 결이 다르다. 폐배터리를 분해해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희귀금속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최근 희귀금속 가격이 올라가면서 폐배터리 재활용이 더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재사용 및 재활용 사업에 적극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스템’을 오창공장에 설치하고 테스트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 현대자동차, KST모빌리티 등과 전기택시 배터리 대여 및 ‘사용 후 배터리’의 ESS 재사용(Reuse) 실증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맺기도 했다.

또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완성차업체 GM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는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리-사이클(Li-Cycle)과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체결했다. 얼티엄셀즈와 리-사이클은 올해 말부터 코발트, 니켈, 리튬, 흑연, 구리, 망간, 알루미늄 등 다양한 원재료를 재활용하는 공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SK온은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과 협약을 맺고 ‘사용 후 배터리’ 성능을 검사하는 방법과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폐배터리를 활용한 ESS를 개발해 건설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신청하기도 했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기업 피엠그로우에 지분 투자를 하는 등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업체 뿐만 아니라 완성차 업체들도 폐배터리에 관심을 기울인다. 테슬라는 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연구 중이고, 폭스바겐은 올해 초 독일 잘츠기터에 배터리 재활용 시범공장(연간 1200t 처리 용량)을 세웠다. 폭스바겐은 배터리 잔여 용량 70% 이상을 재사용하고, 그 미만은 재활용해 신규 배터리 생산에 투입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올해 초부터 울산공장에서 폐배터리를 재사용한 ESS와 태양광 발전을 연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차전지 리사이클링 기업 성일하이텍은 지난 7월 헝가리에 유럽 최대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제2리사이클링파크)를 완공했다. 연간 5만t, 약 2만대 분량의 전기차 배터리를 단독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헝가리 제3리사이클링파크와 독일 리사이클링파크를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왜 폐배터리 주목하나

기업들이 폐배터리에 시선을 두는 건 향후 급속하게 폐배터리가 늘어나면서 처리방안이 골칫거리로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4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폐배터리는 2021년 440개, 2025년 8321개, 2029년 7만8981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배터리에 포함된 산화리튬 등 유독물질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여기에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희귀금속 가격이 치솟으면서 폐배터리 활용 방안에 불을 당겼다. 리서치 업체 아이디테크엑스는 2042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1200만t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재활용된다고 추산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50년 600조원 규모로 성장한다고 관측한다.

그러나,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둘러싼 기준이나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지난해 12월 대기환경보전법·자원순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전기차 폐배터리의 지방자치단체 반납 의무는 사라지고, 회수·보관·재활용을 위한 거점수거센터가 생겼다. 기존에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활용하고 싶어도 대기환경보전법상 보조금을 지급받은 폐배터리는 지자체에 반납해야만 해 민간 차원에서 활용이 어려웠다.

다만 성능기준 마련 등 추가 정비해야 할 법령이 남아 있다. 여기에다 전기차에서 나오는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방법의 경우 아직 표준화된 평가 방식이나 기준도 없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아직 전기차 시장이 초기 단계라 폐배터리가 본격적으로 나올 시기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폐배터리 시장이 열렸다고 보기 어렵다. 배터리 수명이 다 하고 폐배터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2025년쯤부터 폐배터리 시장이 활성화될 것을 보고 이에 적극 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