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혼란이다.”
대입 컨설턴트 25년 경력의 한 입시 전문가의 진단이다. 포항 지진이 있었던 2018학년도와 지난해 코로나19 첫 수능이 천재지변에 가까웠다면 올해는 인재(人災) 양상까지 겹치면서 혼란이 한층 커졌다는 얘기다.
문·이과 통합이란 큰 변화를 추진하는 와중에 수능 난이도 조절은 사실상 실패했고, 문항 오류 논란으로 초유의 ‘빈칸 성적표 사태’까지 벌어졌다. 입시 전문가들은 역대급 ‘눈치작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교육부가 “정시 일정에 변동 없다”고 강조하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평가다. 오는 17일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오류 여부를 가리는 1심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패소해 해당 문항을 전원 정답 처리하더라도 사태를 어느 정도 봉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석학들 사이에서도 “문항 자체가 오류”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판결에 불복해 대입을 파국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정시 일정 변동은 없더라도 이미 생명과학Ⅱ 오류 논란은 수시와 정시를 넘나들며 파장을 미치게 됐다. 17일 오후 1시30분쯤 생명과학Ⅱ 정답처분 취소 소송 판결이 예고되면서, 수시전형 합격자 발표 시한이 당초 16일에서 18일로 이틀 연기된 상태다. 수시 합격자 등록일도 17~20일에서 18~21일, 미등록 충원 기간 등도 줄줄이 미뤄졌다.
평가원은 17일 선고가 나면 오후 8시부터 생명과학Ⅱ 응시자 6515명의 성적을 온라인으로 발급한다. 대학들로서는 단 하루 만에 합격자를 확정해야 한다. 또 정시 모집이 30일 시작되는데 29일에야 수시에서 뽑지 못하고 정시로 이월하는 인원이 확정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정시 학과별 선발인원 최종 확정이 지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명과학Ⅱ 응시자들이 최상위권이어서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 ‘불수능’으로 수시 최저학력기준 충족이 중요 변수가 됐다는 점도 눈치 작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수험생을 더욱 괴롭히는 건 정보 부족이다. 올해 처음으로 문·이과 통합 수능이 시행되다 보니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문·이과의 틀을 없애는 대신 국어와 수학에서 ‘공통+선택형’ 시험 체제를 도입했다. 수학의 경우 문과생은 통상 ‘확률과통계’를, 이과생은 미적분 혹은 기하를 선택한다. 하지만 선택과목별로 표준점수나 등급 분포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깜깜이 입시’가 불가피해졌다.
수험생들이 본인의 위치와 합격 가능성을 예측하기 한층 어려워진 것이다. 일선 학교와 수험생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와중에 수학에서 문·이과생 격차가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과생이 문과 상위권 대학 혹은 학과로 교차지원이 늘어 주요 대학의 경영학과 등의 커트라인이 출렁일 수도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