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최용수!” 경기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리고, 본부석 쪽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환호가 강릉종합운동장에 메아리쳤다. 선수들을 하나하나 끌어안은 최용수(48) 감독이 홈팬들을 향해 주먹을 치켜 올렸다. 선수 시절 수도 없이 관중들을 열광케 했던 세리머니였다. 오렌지색 깃발을 든 관중들이 아리랑 응원가에 맞춰 덩실대며 춤을 췄다.
‘독수리’ 최용수 감독이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1차전 열세를 딛고 강원 FC를 강등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해냈다. 1차전 패배를 딛고 승부를 뒤집은 건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PO)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강원은 12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 하나원큐 K리그 승강 PO 원정 2차전에서 2부 K리그2 준우승팀 대전 하나시티즌에 전반 선제골을 내줬으나 5분 만에 3골을 몰아넣는 집중력을 보여주며 4대 1 역전승했다. 강원은 지난 8일 1차전 0대 1 패배를 합해 종합점수 4대 2로 K리그1 잔류를 확정했다.
이날 경기 시작 전부터 강릉종합운동장 분위기는 여느 날과 달랐다. 강원 팬들은 본부석 쪽 응원석을 빽빽하게 메웠다. 대전 팬 약 450명은 대전의 상징색인 보라색과 청록색 깃발을 든 채 원정 버스 11대에 나눠타고 장장 4시간 거리를 건너왔다. 킥오프 직전 각자의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선수들에게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강원은 1차전 패배를 극복해야 하는 처지였다. 최 감독은 경기 전부터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 했다. 그는 “어차피 치고받고 뺏고 뺏기는 게 축구다. 모 선수가 얘기한 것처럼 ‘압도적인 경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1차전 뒤 대전 마사가 ‘2차전도 압도적으로 이기겠다’고 했던 것을 의식한 언급이었다.
2골 차로 이겨야 하는 처지인 강원은 시작부터 경기를 주도했다. 1차전에 비해 공수 간격을 부쩍 좁히며 상대가 미드필드에서 공을 쉽게 전개하지 못하게 했다. 최 감독은 시작부터 테크니컬에어리어 구역 맨 앞까지 나와 연신 손짓으로 간격을 좁히라고 지시했다. 앞서 대전 중원 핵심인 마사와 이현식에게 농락당하며 결과를 내준 걸 의식한 듯했다.
그러나 첫 득점은 오히려 대전이 먼저 터뜨렸다. 대전은 열세이던 전반 16분 골문에서 30m 가량 떨어진 먼 거리에서 측면 수비수 이종현이 상대 압박이 다른 선수에 몰린 틈을 타 무회전 중거리 슛을 오른쪽 상단 골망에 꽂아 넣었다. 올림픽대표팀 출신 이광연 골키퍼가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지만 어쩔 수 없는 골이었다.
3골 이상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강원 공격은 오히려 이 시점부터 불이 붙기 시작했다. 약 10분 뒤 공격진 에이스 김대원이 왼쪽 측면에서 쇄도하며 동료와 공을 주고받아 단독 돌파를 성공시켰다. 김대원은 문전으로 돌진하는 동료에게 공을 깔아 보냈으나 이 공이 대전 수비 이지솔의 발에 맞고 꺾이며 대전 골망에 들어갔다.
불과 1분 뒤 강원은 추가골을 넣었다. 김대원이 코너킥 기회에서 오른발로 감아보낸 공을 주장 임채민이 반대편 골문 방향에서 달려들며 머리로 받아 넣었다. 바닥에 한 번 튀긴 공은 대전 김동준 골키퍼가 제대로 손 쓸 틈도 없이 들어갔다. 선제골을 내줄 때만 해도 가라앉는 듯했던 경기장 분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열기에 정점을 찍은 건 강원 베테랑 한국영이었다. 한국영은 임채민의 골 3분 뒤 상대 골문 왼쪽 측면에서 넘어온 공을 잡아 정면에서 상대 수비 3명의 태클과 몸싸움을 버텨내며 침착하게 오른발로 대전 골망에 감아 찼다. 강원이 1차전 열세를 불과 5분 만에 뒤집는 순간이었다. 한국영은 주먹을 치켜올리며 벤치로 달려와 최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얼싸안았다.
대전은 후반 거구의 브라질 공격수 바이오를 투입하며 반격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강원은 수비수 셋과 미드필드진이 페널티박스를 중심으로 블럭을 형성하면서 대전 공격을 틀어막았다. 최 감독 장기인 수비 축구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모습이었다. 강원은 오히려 추가시간 최 감독이 교체투입한 황문기가 구석을 노린 오른발 슛으로 추가골까지 넣으며 경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강릉=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