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움짤’ 카톡 정부가 검열?…n번방 방지법 논란

입력 2021-12-10 14:56 수정 2021-12-10 16:23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양이 '움짤'(움직이는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 캡처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을 막기 위한 ‘n번방 방지법’이 10일 시행되면서 주요 플랫폼 업체들이 불법촬영물 필터링 기술 적용에 나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법안에 따른 필터링이 사실상 사전 검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당 법안은 정작 성착취물 사건이 벌어졌던 텔레그램에는 적용이 어렵고 기술 테스트도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10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채팅 검열 우려와 관련된 글들이 다수 게재됐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양이 사진을 올렸는데 검토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관련 사진을 보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올려진 고양이 ‘움짤’(움직이는 사진)에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 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이라는 문구가 떠 있다.

게임 화면을 올렸는데 '방심위에서 검토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는 내용의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애니메이션, 게임 화면을 올렸는데 ‘검토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는 글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카카오톡 검열이라니 여기가 중국이냐. 시작은 음란물이지만 중국처럼 다른 분야로도 검열이 확대될 수도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카카오톡 ‘검열 테스트용’ 오픈 채팅방을 열어 놓고 어떤 영상들이 검열 대상이 되는지 자체적으로 테스트를 벌이기도 했다. 한 이용자는 ‘어느 정도까지 전송이 가능한지 테스트를 하다가 신고를 당해 카카오톡이 정지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부터 매출액 10억원 이상이나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의 SNS, 커뮤니티, 인터넷개인방송, 포털 사업자는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준수해야 한다.

‘움짤’ 올리면 정부 데이터베이스와 대조 작업

관련 조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영상물의 특정한 값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추출하고 불법촬영물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는 방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에는 적용되지 않고 움짤과 영상에 적용된다.

카카오톡의 경우 과거에는 이용자가 오픈 그룹 채팅방에 움짤이나 영상을 올렸을 경우 채팅방으로 콘텐츠가 곧바로 올라간다. 하지만 법 시행 후에는 해당 콘텐츠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불법촬영물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추가된 것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움짤’들은 이 같은 절차 진행을 위해 대기 중인 상태에서 캡처된 화면인 것이다. 데이터베이스 대조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채팅방에 움짤 등이 게시되고 불법 영상물로 판단되면 게시되지 않는다.

현재 카카오톡의 경우 관련 기술은 오픈 그룹 채팅방에만 적용되고 1대 1 오픈 채팅방이나 일반 채팅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결국 오픈 그룹 채팅방에서 음란물 영상을 올리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현재 카카오톡 채팅방에서도 음란물을 공유했다가 신고를 당할 경우 카카오톡 계정이 정지되는 등 자체적인 제재가 가해진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용자들의 신고를 통한 제재와 정부 주도로 채팅에 올려진 ‘움짤’을 일괄 검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누리꾼은 “오픈 채팅방의 사전 검열이 가능하다는 것은 언제든지 일반 채팅방의 대화도 검열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n번방은 못 잡고 초가삼간 태울 수도”

야당에서는 즉각 n번방 방지법에 대한 재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기준의 모호함에 더해 헌법 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심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실질적으로 n번방 사건에서 유통경로가 되었던 텔레그램 등에는 적용이 어려워 결국 실효성이 떨어지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n번방 사태가 발생했던 텔레그램은 해외에 법인을 두고 있어서 사실상 법안 적용에서 제외된다. 국내 업계에서는 국내 업체들에만 과도한 규제가 가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불법 영상물들이 실제로 거래되는 ‘다크웹’ 등에도 해당 법안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번 법안에 따른 불법성 여부 조회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기술이 사용되고 불법 영상물 데이터베이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수집한다. 포털 업체들은 서비스와 해당 기술을 연결해주지만 불법성 여부 판단 등에 관여할 수 없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불법 영상물의 기준이 무엇인지 업체에서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 업체에서 직접 검열을 하는 것처럼 이용자들이 오해하는 것도 부담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관련 기술과 서비스가 충돌해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는데 충분한 검증 없이 법안이 시행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통위 “개인 간 사적 대화 대상 아냐”

방송통신위원회는 n번방 방지법으로 인한 사적검열의 우려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10일 “움짤이나 영상의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방심위가 의결한 불법촬영물 해당 여부만 체크하는 것”이라며 “해외 사업자들도 법안 적용 대상이고, 텔레그램의 경우 사적 채팅이기 때문에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n번방 방지법 개정안이 통과돼 관련 우려가 나올 때 방통위는 “n번방 방지법은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성범죄물에 대해 삭제 등 유통방지 조치를 하거나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한 법안”이라며 “개인간의 사적인 대화는 대상 정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공개된 공간이 아닌 사적인 채팅, 이메일 등은 대상 정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안 취지와 관련해 “인터넷의 특성상 디지털성범죄물이 한번 유포되면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남긴다”며 “빠른 차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업자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법안 취지”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