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숨진 채 발견된 유한기(66)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현 포천도시공사 사장)은 황무성 초대 공사 사장 사퇴 압박 의혹 및 뒷돈 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그는 공사 내 실질적 1인자라는 뜻의 ‘유원’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에 이어 2인자라는 의미에서 ‘유투’로 불렸던 인물이다. 유 전 본부장의 사망으로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규명하려 했던 검찰 수사에도 일단 제동이 불가피하게 됐다.
유 전 본부장은 이날 경기 고양시 자택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4시10분쯤 유 전 본부장이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내용의 실종 신고를 접한 뒤 수색 작업을 벌였다. 유 전 본부장은 오는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불행한 일에 대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는 전날 유 전 본부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2014년 8월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48) 변호사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53) 회계사로부터 한강유역환경청 로비 명목으로 2억원의 뒷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박영수 전 특별검사 인척인 이모씨(대장동 아파트 분양업체 대표)로부터 로비 자금이 조달됐고, 남 변호사 등이 유 전 본부장에게 2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그간 유 전 본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두 차례 소환 조사해 의혹에 대해 따져 물었다. 그는 줄곧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검찰도 증거인멸 가능성을 우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 전 본부장은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지만 특이 사항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차례 조사에 변호인이 모두 참여했고 인권보호 수사규정상 방어권 보장 규정들도 준수됐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유한기, 황무성에 사퇴 종용 “지휘부 전전긍긍”
이번 구속영장에 황 전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 의혹이 포함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의 신병을 확보한 후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를 계속 이어나갈 방침이었다.
유 전 본부장은 2015년 2월 6일 황 전 사장을 찾아가 사표 제출을 종용한 의혹을 받는다. 당시 황 전 사장이 “시장 허락을 받아오라고 그래”라며 사표 제출을 거부하자 유 전 본부장은 “사장님이나 저나 뭔 ‘빽’이 있습니까. 유동규가 앉혀 놓은 것 아닙니까” “아이 참, 시장님 명을 받아서 한 것 아닙니까. 이미 끝난 걸 미련을 가지세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사장이 거부 의사를 밝히자 유 전 본부장은 “이렇게 버틸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전 사장이 “누가”라고 묻자 유 전 본부장은 “지휘부가 그러죠”라고 답했다. 녹음 파일에서는 “시장님 명을 받아 한 일” “시장님 얘기입니다” 등의 언급도 나왔다. 당시 성남시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다.
유 전 본부장과 황 전 사장이 이 같은 대화를 나눈 날은 공교롭게도 김만배씨가 소유한 화천대유자산관리가 설립된 날이었다. 황 전 사장은 결국 다음달 퇴직했고 공사를 떠나기 전 간부들과 마지막으로 식사하는 자리에서 “살면서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황 전 사장은 대장동 사업이 추진될 때 “대형 건설사가 들어와야 컨소시엄이 튼튼해지고 리스크가 줄어든다”(국민일보 10월 29일자 11면 보도)고 공개 지시했는데도 공모지침에 반영되지 않았다.
황 전 사장은 지난달 유 전 본부장에게 자신에 대한 사장 사퇴 압박과 대장동 사업 설계가 이 후보의 ‘지침’ 때문 아니었느냐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지만 유 전 본부장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 전 사장 퇴임 후 유동규 전 본부장이 사장 직무대행에 올라 대장동 사업을 진행했다.
유 전 본부장은 뒷돈 수수, 사퇴 압박 등 일련의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낸 바 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10월 “황 전 사장이 당시 사기 사건으로 기소됐는데 이를 공사에 알리지 않아 사퇴를 건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황 전 사장의 명예를 위해 사퇴를 건의했다는 것이다. 뒷돈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김만배씨와 일면식도 없고, 당연히 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황 전 사장은 이에 대해 “당시 재판을 받는 건 우리 집 사람도 몰랐다”며 유 전 본부장이 관련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당시 둘 간의 대화에서도 사기 사건 연루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검찰 '돌발 변수'에 당혹…수사 제동 불가피
검찰 내부는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갑작스러운 돌발 변수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유 전 본부장의 ‘입’은 황 전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을 지시한 ‘윗선’이 있는지, 황 전 사장이 사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규명하기 위한 핵심 연결고리였다.
녹취록 속에서 유 전 본부장은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 비서실 부실장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언급하면서 “시장님 명을 받아서 한 거 아닙니까”라고 언급했다. 이 후보의 주변인물들이 황 전 사장의 사퇴에 관여했는지 여부도 검찰이 규명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유 전 본부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사퇴 압박을 비롯한 ‘윗선’ 수사가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됐다. 황 전 사장은 유 전 본부장에 대해 “지금이라도 양심선언을 했으면 한다”고 했었다. 공사의 전·현직 관계자들도 유 전 본부장에게 “진실을 밝혀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황 전 사장 사퇴 압박 의혹에 대해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 후보는 지난달 관훈토론에서 황 전 사장 사퇴 압박 의혹에 대해 “사퇴를 압박할 이유가 없다. 사퇴를 왜 안 막았냐, 살펴보지 않았냐고 하지만 본인이 나름 결단해서 온 퇴임 인사 자리에서 내용도 모르는데 말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난 10월에는 “황 전 사장이 퇴임 인사를 하러 왔을 때 ’왜 그만두나’ 이런 생각을 했다. 잘 안 맞아서 그런가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