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병했는데’…남편 “새벽기도 3시간” 강요에 비극

입력 2021-12-10 06:34

대법원이 사고로 혼자 거동하지 못하는 남편을 10년 동안 간병하다 살해한 아내에게 징역형을 확정했다. 이 아내는 남편의 새벽기도 강요 때문에 말다툼을 벌이다 질식사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아내가 힘겹게 간병을 해왔고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점을 감안해 다소 가벼운 형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1심에서는 무죄 선고가 내려졌던 사안이다.

A씨의 남편은 2007년 교통사고를 당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A씨는 남편의 대·소변까지 받으며 10년 동안 간호했다. 매년 드는 병원비만 700만원에 달했다. 2017년부터는 교직도 그만두고 간병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새벽기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병석에 누운 지 10년이 된 남편이 “매일 새벽 5시부터 3시간씩 함께 기도하자”고 강권했던 것이다. A씨는 새벽 기도 문제로 말다툼 끝에 남편을 질식사하게 만든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남편은 2017년 12월 19일 낮에 집에서 사망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사건 전날 밤 고통스럽다는 불만을 드러내면서 남편의 뺨과 목 부위를 친 사실은 있지만, 사망한 당일 남편의 목을 조르거나 코와 입을 막은 적은 없다고 했다. 남편의 시신 목 부위에서는 피부 벗겨짐이나 근육의 국소 출혈, 연골 부분 골절이 발견됐다. 얼굴 피부와 볼 점막 등에도 상처가 있었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살인의 고의로 목을 조르고 코와 입을 막아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1심은 남편 몸의 상처가 A씨에 의해 생겼다고 보기 어렵고, 증세가 심각해 언제든지 사망할 위험이 있었다고 봤다. 아울러 A씨가 현장을 은폐하지 않고 곧바로 119 신고를 하고 응급처치를 한 점도 감안했다.

1심에 증인으로 나온 법의학 전문가는 남편이 목 졸림으로 의식을 잃은 뒤 비구폐색(코와 입이 막힘)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다만 손으로 목을 조르면 보통 나타나는 얼굴의 심한 울혈이나 일혈점이 없었다고 부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비구폐색 질식사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사인은 ‘불명’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가 질병·사고·자해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차례로 검토한 뒤 타살 이외의 다른 경우의 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사망한 남편의 얼굴에는 손톱자국으로 보이는 10개 이상의 상처가 있었다. 이가 거의 없어진 입 안에서 볼 점막 상처도 발견됐다. 2심 재판부는 이를 통해 사망 원인인 외력이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간병이 길어지면서 우울증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A씨가 남편과 자주 부딪치게 된 것도 살인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엄중한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는 10년 이상 B씨를 꾸준히 간병해왔다”며 “간병 등의 문제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경제적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면서 양형기준보다 낮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의 법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선고를 확정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