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새 변이(B.1.1.529)를 오미크론으로 명명하고 우려 변이로 지정하기 전 이미 미국에 해당 변이의 확산이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시기 오미크론 감염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근 국가에 대한 여행객 입국 제한 조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네소타주(州) 첫 오미크론 감염자 피터 맥긴(30)이 지난달 23일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남아공은 지난달 24일 오미크론 변이를 WHO에 보고했고, WHO는 26일에서야 이를 우려 변이로 지정했다. 미네소타 보건당국은 지난주 바이러스 샘플 검사를 한 뒤 맥긴이 오미크론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미크론 변이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 확산이 있었던 셈이다.
맥긴의 감염 경로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19∼21일 뉴욕에서 열린 ‘아니메 NYC 2021’ 행사에 다녀온 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행사에 함께한 지인 여럿도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남아공 등 8개 국가 여행객 입국 제한을 발표한 건 지난달 26일이다.
NYT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또다시 보건 당국의 대응을 앞지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아공과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가해졌을 어려움에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입국 제한) 정책을 매일 재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우치 소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입국 제한 조치 명령을 내린 다음 날 “이런 조치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며 옹호한 바 있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도 “(입국 제한 조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낼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과 전 세계 사례 정보가 점점 더 많아지면서 우리는 매일 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시간 안에 (입국 제한 조치를) 해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도 남아공 등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직후 오미크론 변이의 지역 내 전파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오미크론 변이가 확인되기 전 확산이 진행 중이었던 셈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입국 제한 조치를 ‘여행 아파르트헤이트’라 부르며 “한 지역을 고립시키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의학연구위원회도 이날 “남아공 과학자들이 새 변이를 보고한 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여행 금지 제한을 했다. 그러나 이후 역설적으로 해당 국가에 바이러스 확산이 보고됐다”며 “오미크론 변이는 여행 제한 조치보다 몇 단계 앞서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아공은 새 변이를 발견한 뒤 신속하고 투명하게 이를 공유했는데, 박수를 보내는 대신 여행 제한 조치가 취해졌다”며 “미래의 정보 공유 의지를 위협하고, 글로벌 연대를 약화한다. 정보 공유에 대한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