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한국을 떠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어가는군. 그곳에선 평안하신가? 자네는 한국을 떠나면서 억울하게 재판에 연루되어 경험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내가 어떤 법률가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역설했지. 결국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1년을 훌쩍 넘긴 긴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네가 겪은 인간적 모멸에 대해 이야기했네. 누구도 자네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았고 마지막으로 자네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법관조차도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사또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지.
자네의 하소연에 나는 우리만큼 수사와 사법시스템이 효율적인 나라는 없고, 다만 자네는 재수 없게도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수사와 사법공무원을 만난 것뿐이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네. 자네는 효율과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인간 존중이라고 반박했었지. 그러면서 내게 ‘특권의식을 버리고 결과만큼 과정도 존중하며 종국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률가가 되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었네. 진정 고맙고 느끼는 바가 많은 고언이었네.
어제 우연히 딸의 공부방에서 동화책을 읽었네.
방학도 없이 학원과 숙제에 시달리던 한 아이가 있었다네. 이 아이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개에게서 “너의 손톱과 발톱을 쥐에게 먹이면 쥐가 너처럼 변할 거야”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했더니 이 아이와 똑같은 가짜 아이가 만들어졌네. 그때부터 이 진짜 아이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모두 가짜 아이에게 맡기고 자신은 실컷 놀기만 했지. 그런데, 이 가짜 아이가 주어진 일을 너무 잘해서 모두가 칭찬하자 진짜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모두 가짜 아이에게 내주어야만 했다네. 그제서야 진짜 아이는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찾고자 했지만, 가짜 아이가 완강하게 저항했다네. 진짜 아이는 어려운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결국 자신의 원래 자리를 찾게 되고 더욱 성숙한 아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일세.
자네가 떠난 지 1년이 넘어가는데도 자네가 바라던 법률가로서의 내가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의 수사와 사법시스템이 진행 과정에서 공정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자네의 고언대로 마음을 얻는 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노력은 하고 있네.
우리의 수사와 사법시스템도 변화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네. 자네도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해서 활동을 시작했고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도 어느 정도는 되었다네. 우리가 가짜 아이를 불러들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 아이가 인격적으로 성장해서 돌아온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
이에 반해 사법시스템의 개혁은 더디기만 하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또’같은 고압적인 법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네. 앞으로 최소한의 이타적 성숙성을 가진 사람들을 법관으로 선발하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렇게 되도록 강제하는 방향으로 사법시스템을 개혁해가야 할 것이네.
친구! 혹시 모든 일에 능하지만, 가짜인 아이가 자네를 이 땅에서 내몬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만, 우리의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꼭 지켜봐 주시게. 그리고 진짜 아이가 따뜻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거들랑 자네도 꼭 돌아오시게나.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