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500만원을 돌려 달라는 민사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판결문을 받았지만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는 주문만 있을 뿐 판단 배경이나 이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송 목적 금액이 3000만원 이하라서 판결 이유를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30일 이러한 소액사건 재판 실태를 밝히고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액사건은 소송가액이 3000만원 이하인 사건을 말한다. 소액사건심판법 제정 당시 소액 기준은 20만원이었지만 2017년 3000만원으로 상향됐다. 독일과 일본의 소액사건 기준은 82만원, 610만원에 불과하다.
소액의 기준이 높다 보니 상당수 민사사건이 소액사건으로 분류된다. 최근 5년간 1심 민사사건 중 소액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72.7%에 달했다. 이러한 소액 사건 10건 중 8건은 변호사 없이 당사자 혼자 대응한 ‘나홀로 소송’이었다.
문제는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소액사건 판결문에는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깜깜이 판결문’을 받아보는 당사자 입장에선 승소 패소 이유를 알 수 없다. 최근 5년간 소액사건 항소율은 4.1%로 판결 이유가 기재된 민사사건 항소율(22.3%)에 크게 못 미친다. 정지웅 변호사는 “소액사건에서 패소하면 1심 판결의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2심에서도 깜깜이 항소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액사건에도 판결 이유를 적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이를 담당할 판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소액사건 담당 법관은 163명으로 1인당 4024건의 소액사건을 맡아야 했다. 정 변호사는 “소액 사건의 판결이유 기재 요구와 판사 증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안은 결국 폐기됐으며, 현재 계류된 개정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판사 충원을 위해 논의됐던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최근 국회에서 부결됐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