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가 두 명 있다. 근데 왜 한 명은 친할머니, 한 명은 외할머니일까?”
여성가족부는 24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이런 내용의 그림일기 콘텐츠를 게시했다. 이 작품은 여가부의 평등가족 실천 공모전 수상작이다. 그림일기 형식을 빌려 어린아이 시선에서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작품에선 “친할머니 외할머니처럼 친가와 외가를 구분 짓는 호칭의 사용은 남성 성씨 중심의 사회에서 비롯된 바람직하지 않은 관습”이라고 지적했다.
“단순 호칭일 뿐” vs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
해당 작품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단순 호칭일 뿐인데 뭐가 이렇게 불만이냐”는 의견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는 안 쓰는 게 맞는다”는 입장이 엇갈렸다. 다만 대체로 ‘외할머니’ 표현을 점점 안 쓰는 추세라는 데는 많은 누리꾼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부계혈연 중심에서 모계 사회로 점차 변화하면서 외할머니 표현을 잘 쓰지 않게 됐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딸과 아들을 상속에서 차별하거나 모계 친족과 부계 친족을 구분했던 풍습은 17세기 성리학적 가부장제가 정착되면서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맞벌이 가구 증가로 외할머니가 양육에 적극 참여하면서 거리감 있는 표현인 ‘외할머니’가 사라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엄마 때문에 외가를 더 친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정작 ‘친할 친’은 아빠 쪽에 붙이는 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가부장적인 관념에서 유래한 용어라 좋은 용어는 아니고 사회가 바뀌면 용어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반면 “외할머니어도 엄청 친해서 별 상관이 없었다. 호칭만 저런 것뿐” “현실에서 이런 걸 하나하나 다 따지고 살면 피곤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각자의 문화와 관습이 있고 외할머니가 표준어인 이상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립국어원 “할머니 앞에 지역 이름 표현도 가능”
외할머니를 부를 때는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고, 남들이 어떤 할머니인지 물어볼 때만 외할머니 용어를 쓴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미 구어(口語)로는 잘 사용하지 않게 된 용어라는 취지다. 실제 생활에서 안 쓰면서 자연스럽게 용어가 사라지는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캠페인을 할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외할머니’ 표현을 안 쓰면 외할머니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할머니 앞에 지역 이름을 붙여 ○○동 할머니로 구분하거나 아파트 이름을 붙여서 구분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아이들이 ‘엄마 할머니’ ‘아빠 할머니’로 구분해 부른다는 사례도 있었다. 친할머니는 친할머니라고 부르고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로 부른다는 가족도 있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펴낸 언어 예절 안내서에서도 “요즘은 외가와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가정들이 많아 외할머니를 외할머니라 하지 않고 할머니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꼭 외할머니를 외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언어 예절에 어긋난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25일 외할머니 표현에 대해 “현재 표준어로 올라와 있어 쓸 수는 있다”며 “외할머니 대신 지역 이름을 붙여 ○○할머니로 부르는 것도 가능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