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하던 흑인 청년 살인 사건 유죄…연이은 인종갈등 상징

입력 2021-11-25 07:05 수정 2021-11-25 09:30

미국에서 인종갈등을 상징하는 주요 사건 평결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조지아주에서 조깅을 하던 25세 흑인 청년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남성 3명이 살인 혐의 등으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지난주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 형사재판 배심원단이 카일 리튼하우스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린 지 닷새 만이다. 리튼하우스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쏴 2명을 숨지게 했는데, 배심원단은 이를 정당방위로 봤다.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함께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을 격화시킨 주요 사건으로 꼽힌다.

조지아주 글린 카운티 법원 배심원단은 24일(현지시간) 지난해 2월 조지아주 브런즈윅에서 조깅하던 흑인 청년 아머드 아버리(25)를 총격 살해한 혐의로 백인 남성 그레고리 맥마이클(65)과 그의 아들 트래비스(35), 이웃 윌리엄 브라이언(52)에 대해 유죄평결을 내렸다. 배심원단은 가중 폭행, 거짓 투옥 및 거짓 투옥 미수 혐의 등도 모두 유죄로 봤다. 외신은 이들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이와 별도로 연방법원에서 증오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도 받아야 한다.

피고인들은 조깅 중이던 아버리를 동네에서 발생한 절도사건 용의자로 의심하고 그를 붙잡기 위해 트럭으로 추격했고, 저항하자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그러나 아버리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린다 두니코스키 검사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증오심으로 피해자를 추격했다. 단지 흑인 남성이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인 측은 “시민 체포권에 따른 적법한 추적”이라고 반박했다. 아버리가 달려들어 자기방어를 위해 산탄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사건 발생 석 달이 지나도록 이들을 체포하거나 기소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5월 피고인들이 비무장 상태였던 아버리를 총으로 쏜 휴대전화 영상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이들은 사건 발생 73일 만에 다른 지역 검찰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됐다.

아버리 사건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플로이드 사건과 맞물리며 미 전역에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확산시켰다. 아버리 사건 재판 배심원단이 백인 11명과 흑인 1명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판 공정성 문제까지 제기됐다.


이 때문에 이날 유죄 평결이 나오자 흑인 커뮤니티는 크게 환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판사가 트래비스에 대한 악의적 살인(malice murder) 혐의 유죄를 언급할 때 청중들이 환호했다. 판사는 재판절차를 중지하고 재판장을 떠나거나 조용히 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법원 주변에도 재판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다. 피해자 측이 승리를 기뻐하며 손을 들고 법정 밖으로 나오자 주변에서 “정의가 이뤄졌다”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들을 데리고 온 흑인 아버지가 많았다”고 보도했다. 10살 아들과 함께 법원을 찾은 남성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리튼하우스 무죄 평결 직후 열린 재판이어서 걱정하는 시민들도 많았다고 한다. WP는 “많은 사람이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을 시험하는 사건으로 여겼다. 지역 사회 지도자들은 무죄가 나오면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울 것을 염려했다”고 보도했다.

30대 남성은 “리튼하우스 판결 이후 낙담했고 두려웠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정의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재확인시켜 줬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버리 피살 사건은 이 나라에서 인종적 정의를 위한 싸움을 위해 갈 길이 얼마나 먼지를 보여주는 충격적 사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백인 11명과 흑인 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흑인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형사 사법 방향이 전환된 곳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