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아동 대상범죄 들끓는데…헛바퀴 도는 자치경찰제

입력 2021-11-24 17:13 수정 2021-11-24 18:57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오전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유공경찰에게 표창장을 전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생치안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도입된 자치경찰제도가 시행 5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헛바퀴를 돌고 있다. 최근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 끝에 숨진 30대 여성의 ‘스마트워치’ 사건을 비롯해 여성·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으나 자치경찰위원회는 사실상 손놓고 있는 실정이어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사라는 장벽
강동구 천호동 자택에서 3세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의붓어머니 A씨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정부 검·경수사권 조정의 일환으로 탄생한 자치경찰은 스토킹·가정폭력·아동학대 등 민생범죄에 대한 수사·순찰·예방 권한을 갖고 지난 7월 출범했다. 다만 스토킹처벌법의 경우에는 경찰청에서 국가사무로 유권해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는 각 일선서 등에 3700여명에 대한 임용권을 가지고 있다. 관할 사건이 발생할 경우 서울경찰청장을 직접 지휘·감독한다.

문제는 ‘관할’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자치경찰을 출범시키며 수사는 국가수사본부가, 정보·외사·경비·감사 등은 경찰청이 담당토록 했다. 수사권 조정으로 막강해진 경찰 업무를 분산하고 민생치안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관할 사건이 발생해도 이는 ‘수사 대상’이라며 국가수사본부가 사건을 도맡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의붓어머니의 폭행으로 사망한 3세 아이 사건이나 ‘스마트워치’ 건 역시 법리상은 자치경찰 사무지만 국가수사본부가 전면에 나섰다. 자치경찰위는 해당 수사를 형식상 ‘담당’만 할 뿐 수사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개별 사건에 대한 수사는 국가수사본부의 지휘·감독에 따라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는 ‘예방·보호조치’?…모호한 규정
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한 30대 남성이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혀 20일 오후 서울 중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규정에 대한 해석의 차이 역시 자치경찰제를 있으나 마나 한 제도로 만들고 있다.
지난 19일 30대 여성 B씨는 전 남자친구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다가 사망했다. 그는 당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스마트워치도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스마트워치 보급을 ‘예방·보호조치’로 본다면 자치경찰의 영역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련 질의에 “수사로 연결되는 측면도 있고 현행 경찰서 청문감사관실 등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또 현재 스토킹 처벌법 역시 경찰청에서 국가사무라고 공지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사실 스마트워치는 직접 수사 업무는 아니다”라며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방 업무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선 또 다른 얘기도 나온다. 다른 경찰 유관부서 고위 관계자는 “자치 사무로 볼 여지도 있지만, 수사의 일환으로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사무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치 경찰은 물론 경찰 내부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업무 해석 조차 엇갈리는 셈이다.

생활안전을 위한 순찰에 대한 규정도 마찬가지다. ‘범죄예방을 위한 순찰 시행’ 등이 규정되어있지만 정작 순찰을 담당해야할 지구대·파출소가 112치안종합상황실 소속이어서 자치경찰위에서 지휘·감독을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서울시 “역할 있을 것 같아도 권한 없어”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

서울 자치경찰위는 업무 영역 확대를 요청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스토킹 범죄나 층간소음 사건, 가정폭력 사건 등을 보면 우리가 해야할 역할이 있을 것 같고, 지휘·명령을 발동하고 싶은데 실질적으로 우리에겐 요청 권한이 없는 수준”이라며 “법 체계도 명확하지 않다. 자치경찰엔 ‘사건’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치경찰제에 대해 고민을 가지고 있다. 지역별 맞춤 치안 서비스 등 획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솔직히 우리에게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행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난달 페이스북을 통해 “자치경찰제라고 하나 경찰관은 모두 국가직 공무원”이라며 “시민 생활에 가장 밀착된 지구대, 파출소는 국가경찰부서로 되어 있다. 이런 자치경찰이 어떻게 지역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냐”고 토로했다.

또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권한 없이 책임만 지도록 하는 것 또한 부당하다”하며 “시·도 경찰청의 조직과 인력을 시·도로 이관하는 이원화 모델을 골자로 한 자치경찰제의 근본적 개선에 조속히 착수해달라”고 정부·국회에 촉구했다.

현재 서울시가 일정 부분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치경찰 관련 인력은 3700여명이다. 서울경찰청 전체의 10% 남짓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년도 예산은 국가보조금을 포함해 약 192억원으로 책정됐다. 국가보조금으로 책정된 예산은 대부분 지정된 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어 자치경찰위의 자율권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전문가 “전권 줘야” “적극적 지휘권 행사 필요”

전문가 역시 실질적으로 비대해진 경찰 조직을 견제한다는 측면과 지역별 맞춤형 치안 대응 등에서 자치경찰제의 의미는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기능 여건은 갖춰놓고 제대로 하라고 해야지 손발을 묶어놓고 뛰라하면 안되는 것”이라며 “현행 자치경찰제는 권한은 없고 의무와 예산만 챙기는 셈. 지자체는 재정부담하고 일거리만 떠맡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짜 자치경찰제가 되려면 지방자치단체에 민생 업무와 관련해서는 수사권, 예산권, 인사권 등 전권을 줘야한다”며 “특히 경찰의 예방업무의 기본은 순찰인데 그건 일단 자치경찰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치경찰제 시행 초기인만큼 현행 제도 하에서 자치경찰위가 보다 권한을 요구하기 이전에 기본적인 부분에서 영향력을 키워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현행 자치경찰제가 국가경찰 중심인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또 하나의 감시감독기관이 생긴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자치경찰위도 스마트워치는 범죄예방 디바이스인만큼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시·도경찰청에 지휘·감독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충분히 자치경찰위가 각 시·도 경찰청 조직을 자꾸 깨우고 일어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