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흔적 시선 쏠려…만행 고발 상징물 활용

입력 2021-11-24 15:41

5·18민주화운동 당시 유혈진압의 실질적 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숨진 이후 광주·전남 곳곳에 남은 전 씨의 흔적에 세간의 시선이 쏠린다. 집권 시기 전 씨를 찬양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와 비석 등이 역사적 심판의 상징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4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망월동 구 묘역(민족민주 열사묘역) 입구 땅바닥에 박혀 묘역을 찾은 추모객들이 밟고 지나가는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대표적이다.

이 기념비는 애초 전 씨가 부인 이순자 씨와 함께 1982년 3월 인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민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언론 통폐합 등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집권 시기를 반영하듯 ‘전두환 대통령 각회 내외분 민박마을’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하지만 이 기념비는 1987년 6월 항쟁의 거센 저항으로 전 씨가 물러난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광주전남민주동의회는 1989년 1월 기념비를 망치로 부쉈고 일부를 5·18 희생자들이 안장된 망월동 구 묘역에 가져와 땅바닥에 묻었다. 추모·참배객들은 대부분 5월 영령들의 혼을 달래고 전 씨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이 기념비를 밟고 지나간다.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를 비롯해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등이 기념비를 발로 밟고 지나갔다. 전 씨의 고향인 경남 합천 ‘전두환 적폐 청산 경남운동본부 준비위’ 회원들도 지난달 묘역 참배 후 기념비를 밟았다. 반면 보수 진영 인사들은 기념비를 못 본 척 지나치기 일쑤다.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많은 이들이 밟고 가면서 기념비가 갈라지고 글씨가 흐려졌다”며 “강화유리로 덮고 보존해 5·18 진상규명을 바라는 추모·참배객들이 앞으로도 밟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5·18 당시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한 담양 11공수여단 입구 ‘전두환 비석’도 마찬가지 신세다.

1983년 11공수여단이 담양으로 이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진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한문 글자가 새겨진 이 비석은 5·18의 ‘전승 기념비’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부대가 자진 철거했다.

2019년 후손들의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광주 상무지구 5·18 자유공원으로 옮겨질 예정이던 비석은 5월 단체 회원들의 반발로 현재 공원 구석에 방치돼 있다.

땅에 묻히지는 않았으나 유혈진압 등에 대한 ‘항의’ 표시로 거꾸로 눕혀진 이 비석 역시 시민들이 밟고 올라서곤 한다.

5.18 자유공원은 1980년 당시 군사 법정과 함께 폭도라는 누명을 쓴 시민들을 가두고 온갖 고문을 가한 영창, 헌병대 내무반 등을 원형 복원한 곳이다.

전남 장성 상무대 무각사에 걸린 일명 ‘전두환 범종’도 논란거리다. 문제의 범종은 전 씨가 5·18 이듬해 상무대 군 법당인 무각사에 기증한 것으로 높이 3m, 무게 2t이다. ‘상무대 호국의 종, 대통령 전두환 각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94년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광주 5·18 기념공원 내 사찰에 보관돼 있던 이 범종은 2006년 12월 철거된 뒤 행방이 묘연했다가 2014년 장성 상무대 무각사 군 법당에서 다시 사용 중인 사실이 드러났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 씨를 찬양한 기념비나 비석은 시민들의 여론 수렴을 거쳐 깔끔히 철거하던지 그의 만행을 고발하는 상징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