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지 이튿날인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전씨가 군사독재와 민주화 시위 탄압,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학살 등 역사적 과오를 남기고도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전씨 빈소에는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낸 근조화환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이명박 전 대통령의 화환이 도착했다. 이외에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근조화환도 자리했다. 유족 측은 사망 당일인 23일까지 조문객 약 300명이 빈소에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이튿날에도 지난 26일 사망한 12·12 군사 쿠데타 동지 고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전씨 비소는 드문드문 발걸음이 이어졌다. 제5공화국 관계자 등 전씨와 인연이 있거나 반 전 총장처럼 공직자 출신으로서 전직 대통령에게 도리를 지킨다는 취지로 온 일부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다.
조문을 마친 반 전 총장은 “여러 가지 공과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인간 모두는 명암이 있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특히 과오가 많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많은 교훈을 받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민주항쟁 희생자에 대한 사과할 기회를 만들지 못해 안타깝다”며 “"저는 이달 초 5·18 국립민주묘지에서 참배했다. 얼마나 많은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희생했는지 경의를 표하고 참배를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 조문을 왔다”고 덧붙였다.
‘6공 황태자’로 불리는 박철언 전 의원은 “집권 과정에 엄청난 과오도 있었지만 재임 기간 공적이 대단하다”고 평가하며 “5월 민주화운동에 있었던 비극적 상황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아픔을 치유해야 할 것 아니냐고 고심하는 것을 곁에서 봤다. 아픔이 엄청나겠지만 이제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을 가져주면 좋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그는 제5공화국 헌법 기초 작업에 참여하고 안기부 특별보좌관을 지낸 바 있다.
제5공화국 마지막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용갑 전 의원도 방문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아무리 국민들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해도 산골짝 어느 깊은 조그만 모퉁이에 한 몸 누이는 걸 허용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날 정영의 전 재무부 장관, 사공일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조남풍 전 국군보안사령관이 빈소에 찾았다. 전씨가 백담사에 칩거할 당시 동행했던 차찬회 전 대통령경호실 기획실장도 방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정치인 한 사람으로 마땅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 왔다”며 다녀갔다.
여야 대선 후보 4인은 조문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3일 가장 먼저 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가는 쪽에 무게를 싣는 듯했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
전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은 조화, 조문, 국가장 모두 불가”라고 선언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을 대표해 조화만 보내면서도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 여부를 결정하라”고 말했지만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조문한 이는 드문 상황이다.
김기현 원내대표가 개인 자격으로 조문할 계획이고, 한때 전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윤상현 의원이 전날 조문한 정도가 전부다. 김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싫든 좋든 한국사의 한 장면을 기록했던 분이시고 많은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엄청난 사건의 주역이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며 “인간적으로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조문하는 것이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