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법인 명의 대포통장 1000여개 유통…100억원 챙긴 일당

입력 2021-11-24 14:13

유령법인 명의로 만든 1000여개의 대포통장을 유통해 100억원대의 돈을 받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대포통장 유통 조직원 117명을 붙잡고 총책 A씨 등 13명을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396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한 후 법인 명의의 대포통장 954개를 개설, 보이스피싱·사이버 도박 조직에 판매하는 등 2019년 4월부터 지난 5월까지 100억원 상당의 수익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일당은 법인 설립이 쉽고 법인 명의로 다수의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법인 계좌는 이체한도가 높을 뿐 아니라 거래 금액이 많아도 금융당국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일부 명의자는 혼자서 20개 이상의 대포통장을 개설한 경우도 있었다.

A씨 등은 지인들에게 법인 통장을 개설하도록 한 다음에 한달 이용료로 80만원을 주고 매입했다. 이를 다시 월 이용료 180만원에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판매했다.

이들은 특히 판매한 계좌가 보이스피싱 등으로 지급정지가 되면 명의자에게 연락해 해당계좌를 풀게 하거나 다른 계좌로 대체해주는 등 애프터서비스(AS)까지 해주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또 ‘범행 시 반드시 대포폰만 사용한다’ ‘텔레그램을 이용하고 닉네임으로만 대화한다’ ‘명의자의 경우 검거 시 대출 사기를 당했다고 진술한다’와 같은 행동강령을 만들어 조직원을 단속했다.

검거됐을 경우에는 변호사 비용과 벌금을 대납하고, 집행유예를 받으면 위로금을 주는 등 조직원 관리도 철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불법으로 유통한 대포통장에 입금된 피해액만 7조원 이상에 달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A씨의 재산 등 11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에 대해 기소 전 몰수보전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인 부탁이나 대출 미끼, 고액 알바의 유혹에 빠져 통장 명의를 빌려주면 그 자체만으로도 징역 5년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며 “특히 보이스피싱이나 불법 온라인 도박 등 더 큰 범죄의 수단이 되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점을 인식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