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금 더 내는 게 맞아요… 부자증세보단 보편증세로”

입력 2021-11-24 11:24 수정 2021-11-24 13:26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원 마련 대책이 동반되지 않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허언에 가깝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각종 비과세와 세금 감면 축소, 부가가치세 13%로 인상, 모든 국민이 납세에 참여하는 ‘1% 최저한세’ 도입을 제시했다. 김지훈 기자

“표가 되는지 안 되는지에 따라 ‘청기 올려, 백기 올려’ 게임을 하듯 세금 공약을 내놓고 있다. 기본소득은 항구적인 재원이 필요한데 국토보유세는 맹점이 많다.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서 큰 변화 없이 유지할 필요가 있다.”

재정학자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에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조세 공약에 대해 물었다. 그는 “두 후보에게 조세에 대한 깊은 이해나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의 소장파 학자인 우 교수는 조세재정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출신으로 국내 최고의 조세 정책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최근에는 새 정부에 경제개혁을 주문한 ‘정책의 시간’과 한국경제를 거시적으로 조망한 ‘2022 한국경제 대전망’에 저자로 참여했다.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친형이다. 그에게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적‧이념적 이슈가 된 포퓰리즘적 조세 정책과 궁극적으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세제개편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먼저 연일 기사화되고 있는 종부세와 윤 후보가 들고나온 종부세 전면 재검토 공약을 평가해보자.

“종부세에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이미 2008년 헌법재판소가 이중과세를 비롯한 여러 쟁점에 대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위헌과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던 세대별 합산 과세가 없어졌고 1주택 장기 보유자에게 세액공제가 적용되면서 문제가 대부분 해소됐다. 다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세 부담이 늘어나는 건 짚어봐야 한다. 지난해 종부세액이 3조원대였는데 올해는 5조7000억원이다(야당은 1주택자의 평균 종부세가 97만원에서 152만원으로 1년새 55%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재산세가 전년 대비 2% 이상 오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납세자가 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인상 속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발송된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우편함에 꽂혀있는 ‘종부세 위헌청구 시민연대’의 홍보물. 이 단체는 이날 서초구 내 시세 30억원 이상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종합부동산세 위헌법률 심판 청구 필요성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벌였다. 연합뉴스

-이전에는 ‘종부세를 제대로 걷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청년층의 주거복지 재원으로 쓰자’고 제안했는데.

“저는 증세론자고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쪽을 지지한다. 희소한 땅을 너무 많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시그널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부세를 늘려가야 한다는 것과 이렇게 빠르게 밀어붙이듯 늘려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 한국의 재산세 부담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것도 잘못된 연구다. 집값 대비가 아닌 소득 대비로 보면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취등록세까지 많이 내는 건 사실이다. 보유세를 올리면 거래세를 내려야 한다.”

-윤 후보가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종부세 폐지나 면제까지 가능하다고 한 건 그런 측면을 파고든 것 아니겠나.

“아파트 시세가 16억원 정도면 종부세 기준인 공시가격 11억원이 된다. 넉넉히 잡으면 서울시 아파트 5채 중 1채가 종부세 대상이다. 아파트 관리비를 5000원만 올리려고 해도 쉽지 않다. 종부세 납세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그 지점을 윤 후보가 종부세 조정안으로 치고 들어왔고, 캠페인으로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종부세는 유지해야… 국토보유세 맹점 많아”

-윤 후보는 종부세 재검토로 감세를,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신설로 증세를 말하고 있다.

“윤 후보는 조세 관련 공약이 별로 없다. 경선 토론으로 미뤄보면 국가채무를 부정적으로 보고 복지 지출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지출을 늘리지 않겠다고 했다. 지출을 늘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큰 증세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윤 후보가 종부세를 비롯한 조세 정책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토론에서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체감 부담이 커진다고 했는데 자영업자들은 부가세를 내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낸 부가세를 걷어서 대신 납부하고, 냈던 부가세를 돌려받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이 후보 공약은 어떤가. 국토보유세를 걷어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인데.

“증세 깃발을 들고 선거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증세를 먼저 말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국토보유세는 맹점이 많다. 토지만 과세하는 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부세 도입 이전에 재산세를 토지분과 건물분으로 나눠서 과세했다. 2003년인가 재산세를 매겼더니 쏘나타 자동차세가 30만~40만원이었는데 강남구 은마아파트가 16만원 나왔다. 대지 지분이 작아서였다. 이런 점 때문에 건물과 토지를 합산해 과세하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전답이다. 논과 밭은 농민들을 위해서 가장 낮은 0.07% 세율로 분리과세 하고 있다. 이걸 합산해서 세율 0.5%에서 안에 따라 1.2%나 1.8%까지 누진과세 하겠다는 것이다. 전답은 물론 과수원, 임야, 종중 소유의 땅, 사찰이 갖고 있는 산도 마찬가지다.”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재현되는 거 아닌가.

“그럼 농지는 예외 처리하겠다는 건데, 그런 식이면 공장이나 창고처럼 생산에 투입되는 토지 등 예외로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탁상공론으로 세수가 25조~30조라고 예상하는 거다. 국토보유세는 19세기 이론이 토대여서 지금 관점에는 맞지 않는다.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얘기하시는 분들이 국제 저널에 논문을 써서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지 검증을 받아봤으면 한다.”


-공식 검토한 바 없다고 물러서긴 했지만 이 후보가 20대 소득세 비과세나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언급한 걸 보면 증세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일관성이 없다.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인 20대에게 소득세를 감면해주자는 건 이 후보 공약을 안 읽어본 사람이 낸 아이디어다. 공약에는 현재 50조원 정도 되는 비과세 감면을 25조원으로 줄이고 추가 과세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겠다는 게 들어있다. 비과세 감면을 늘려서 세금을 안 걷는 게 아니라 더 걷어서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위한 소득세 감면은 이미 150만원까지 하고 있다. 연봉 3000만원이면 소득세가 30만~40만원이어서 소득세를 내는 청년은 거의 없다. 세금을 내는 건 대기업이나 은행 직원인데, 그들을 깎아주면 누가 세금을 내겠나. 가상자산을 감세하자는 것도 어떤 이론이나 논리구조를 따라 낸 공약이 아니라 표가 될 만한 청년 정책이라 가져온 것이다.”

“증세 없이 복지 없어… 부가세 13%로 인상해야”

-정치인들에게 증세는 금기와 같다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에서 중산층 재건을 위한 증세를 내걸고 당선됐다. 증세 공약과는 무관하게 반트럼프 정서에 힘입은 승리로 봐야 하는 건가.

“트럼프가 감세를 많이 했고 국가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바이든의 재정 지출안이 절반도 아닌 3분의 1로 줄어서 통과가 됐다. 그만큼 증세가 어렵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다만 미국은 교육, 소방, 치안을 전부 지방정부가 제공한다. 내가 재산세를 내면 동네 공원이 좋아지고 학교가 좋아지고 치안이 좋아진다. 세금을 내서 뿌듯해지고 집값이 올라 상쇄가 된다. 한국의 재산세는 그렇지 않다.”

-‘증세 없이 복지 없다’고 단언하면서 부가가치세를 13%로 올리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선진국들도 부가세를 통해 상당한 세수를 확보하고 있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안정적인 세원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소득세와 법인세 비중이 높다. 소득세 법인세를 더 올려도 복지를 구축하기에는 모자라다. 스웨덴 같은 곳은 부가세율이 25%이고 대부분 19% 정도로 과세하고 있다. 우리는 1977년에 13%로 부가세를 도입했다가 3% 탄력세율을 적용해 10%로 고정했던 게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최초 도입 때 세율인 13%까지라도 인상할 필요가 있다.”


-2018년 통계를 보니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9%보다 낮았다. 체감은 그렇지 않은데, 세금을 적게 내는 건가.

“그렇다. 평균은 25~26%인데 한국은 19~20%를 오간다. 일본과 미국도 낮은 편이지만 한국이 특히 낮다. 돈 벌어서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각자도생 사회인 셈이다. 복지국가로 가겠다면 세금을 더 내는 게 맞다. 노무현정부 때 2030년까지 OECD 평균으로 맞추겠다는 ‘비전 2030’이 있었는데 평균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근로자 37%가 세금 안내… ‘1% 소득세 최저한세’ 도입을

-조세 정책의 원칙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다. 한국 근로자 10명 중 4명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건 세원이 너무 좁은 것 아닌가.

“비유하자면 활주로가 길수록 비행기가 높게 날 수 있는 것과 같다. 활주로를 소득 구간이라고 했을 때 저 아래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면 전체적으로 부담이 크지 않고 부자들에게도 세금을 많이 매길 수 있다.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가 37%인데, 선진국은 10~15% 수준이다. 전체 자영업자의 75%도 소득이 2000만원 이하라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이것은 국민 개세주의(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부가세 인상과 함께 보편증세를 할 수 있는 방안으로 모든 사람이 납세에 참여하는 ‘1% 소득세 최저한세’ 도입을 제안한다. 반드시 1%일 필요는 없다. 0.7%나 0.8%도 좋다.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로 최소한 일정 세금 이상은 부담하자는 취지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보편증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눔프(Not out of my pocket‧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뜻) 현상이 있지 않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가 부자 증세와 대기업이 내는 법인세를 늘리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은 과세에 굉장히 민감한 나라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데 북유럽처럼 고부담 고복지를 위해 조세부담률이 25%까지 높아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후보는 소득이 보장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먼저 진도를 나가야 할 건 보육부터 간병까지 안정적인 돌봄이 가능한 중부담 중복지이다. GDP 대비 복지 지출을 보면 한국은 11%, 선진국은 20% 정도다. 중간 단계인 15%로 가려면 10년 가까이 나눠서 조금씩 올리기 시작해 증세로 절반, 4대 사회보험료 현실화로 절반, 이렇게 해야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토보유세 얘기해서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가 두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자 증세와 핀셋 과세가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통계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2020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소득 상위 5%가 전체 소득의 24.8%를 가져갔고, 근로소득 및 종합소득세의 65.1%를 부담했다. 부자 증세가 부자가 적정한 세금을 내지 않으니 나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조세저항을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얘기다. 다만 단박에 보편증세로 가기 어렵기 때문에 부자 증세를 거쳐야 한다. 부자 증세를 하면서 보편증세를 말해야 국민에게 수용 가능한 증세안이 된다. 부자 증세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지, 부자 증세로 세수를 더 걷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건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에게서 단돈 1만원이라도 가져올 때는 소중하고 어려운 것으로 여기고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유와 원칙,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종부세는 상위 2%만 내는 세금이기 때문에 별문제 없다고 여론전을 펴고 있다. 단 한 명이 내더라도 국세에 기여하는 애국자들이고 국가가 고맙게 생각한다는 접근방식이어야 한다.”


-예외적이지만 올해 초과 세수가 19조원이나 걷혔다는데 세금을 더 내라는 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국민이 증세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정부가 세금을 공정하게 걷고 적재적소에 쓴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증세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릴 해법이 있나.

“복지국가로 향해야 하지만 증세는 어려우니 현실적으로 당분간 국가채무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학자들이 많다. 저도 부가세 인상이 100%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대선후보들에게 계속 질문하고 압박해 합리적인 증세안이 나오게 해야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로 갈 수 있지 않겠나.”

권혜숙 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