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유 방출 결정에도 유가는 상승…바이든 “머지않아 떨어질 것”

입력 2021-11-24 07:23 수정 2021-11-24 08:12

미국이 주요 석유 소비국들과 함께 전략비축유(SPR) 방출을 공식 발표한 날 국제유가는 오히려 올랐다. SPR 방출 정도로는 가격 안정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 전망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SPR 방출 조치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산유국 협의체 ‘OPEC 플러스’(OPEC+)의 공급 확대 여지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OPEC+가 SPR 방출에 대응해 기존 원유 생산량 계획 수정 가능성마저 시사하면서 가격 변동성 우려는 커졌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23일(현지시간) 배럴당 78.50달러로 전날보다 2.3%(1.75달러) 상승 마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SPR 방출을 공식화하며 공급 안정에 적극 나서기로 했지만, 시장은 의구심을 보인 셈이다. SPR은 용량의 한계도 분명하다.

블룸버그는 이날 유가 상승을 언급하며 “SPR 방출 소문이 이미 가격에 반영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WTI는 이달 초 배럴당 84달러를 웃돌았지만 이후 10% 가까이 하락하다 전날부터 다시 반등했다.

시장은 다음 달 2일 열리는 OPEC+ 화상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OPEC이 SPR 방출로 인한 가격 하락 효과를 막기 위해 생산량 증가를 늦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재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여파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봉쇄조치가 다시 시작될 경우 수요 감소로 이어져 산유국으로서는 증산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데미안 쿠르발린 연구원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OPEC 입장에선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인센티브가 없게 됐다”며 “미국의 SPR 발표는 시장 예상치보다 작고, 인상적이지도 않아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 캐롤라인 베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유가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내리기에 충분하지 않고, OPEC+가 생산량 증가 속도를 늦추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외환거래 플랫폼 오안다(Oanda)의 에드워드 모야 분석가는 “석유 수요 전망에 대한 단기적 불확실성이 있다. 생산 계획을 축소하더라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고 했다.

이날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OPEC+의 생산량은 지난 9월과 10월 모두 계획보다 목표치를 밑돌았다. OPEC+ 지난 8월부터 매월 하루 40만 배럴씩 점진적으로 증산한다는 계획을 유지해 왔는데, 실제로는 이보다도 생산량이 적었다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규모 산유국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주로 문제가 발생했다. 로이터통신은 “투자 부족, 유지 관리 문제, 정전 등으로 두 국가에서 지난달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 석유거래업체인 비톨은 이달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가격 상승 위험은 여전히 있다. 배럴당 10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5000만 배럴 규모의 SPR 방출을 공식 발표하며 “이번 방출은 역대 가장 큰 규모이고, 인도, 일본, 한국, 영국, 중국이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휘발유 가격에 직면한 이유는 석유 생산국과 대형 기업이 수요에 맞출 정도로 신속히 공급을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조치가) 공급 부족을 해결하고,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룻밤 사이에 높은 휘발유 가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지만 분명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머지않아 가격 하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기업들 책임도 돌렸다. 그는 “이번 발표 전 석유 가격은 하락하고 있었다. 휘발유 도매시장은 지난 몇 주 동안 약 10% 내렸는데, 주요소 가격은 한 푼도 내리지 않았다”며 “공급업체들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다.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거래위원회에 이 같은 행위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유가 상승은 환경 문제와는 무관하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휘발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변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며 화석연료 개발을 저지해 온 게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한 공화당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존 바라소 상원의원은 “SPR을 두드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에너지와 전쟁을 벌여 가격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휘발유 가격은 내년 초 갤런당 3달러 밑으로 하락해서 점차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