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과오…12·12 군사 쿠데타와 광주 유혈 진압

입력 2021-11-23 17:52
전두환 전 대통령. 국민일보 자료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등은 그의 역사적 과오다. 전씨는 특히 쿠데타에 저항하는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씨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전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 정호용 전 의원 등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들과 군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멤버들이 주동자였다. 전씨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가 없이 체포했다. 또 총칼로 국방부와 육군본부의 점거에 성공하며 군권을 장악했다.

전씨는 1980년 권력을 향한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서울의 봄’이 왔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터져 나오자 전씨는 그해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통해 이를 짓밟았다. 정치활동을 일체 금지시켰고 김영삼·김대중 등 야당 정치인들을 체포했다. 이에 반발한 광주에서는 5월 18일부터 학생은 물론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전씨는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였지만 사실상 군부의 수장이었다. 그는 대규모 공수부대의 광주 투입을 지시하며 진압을 주도했다.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상대로 발포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군이 그 국민에게 총을 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저항했고, 총격전으로 번졌다.

전두환 신군부의 지시로 헬기 사격까지 동원해 시민들을 학살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전씨는 광주 발포 명령 여부에 대해 끝까지 부인했다.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씨는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정권을 장악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8월 사임하자, 전씨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이어 대통령 간선제·7년 단임제를 핵심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한 후 1981년 2월 제12대 대통령에 다시 선출됐다. 5공화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씨는 집권 기간 동안 권위적인 통치를 통해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다. 집권 초 언론통폐합을 실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삼청교육대를 설치하는 등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또 대학생 강제징집에 의한 녹화사업, 간첩조작 사건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붙잡아 가뒀다. 그러나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열기는 전국을 뒤덮었고, 전두환 정권은 벼랑에 몰렸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