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국제그룹 해체, 재벌 문어발 확장… 전두환과 기업의 악연

입력 2021-11-23 14:39 수정 2021-11-23 15:22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1년 6월 동남아 순방 당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교민 리셉션을 개최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정주영 회장이 전 전 대통령과 인사를 하고 있다. 전경련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과 기업의 관계는 ‘정경유착’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았고, 이를 대가로 각종 편의를 봐줬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전씨는 1996년 2월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들이 불안을 느꼈다”면서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대통령 재직시절에 삼성그룹 220억원, 현대그룹 220억원, 동아그룹 180억원, 대우그룹 150억원 등으로 주요 그룹이 수백억원 이상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순직자 유자녀를 위한 장학재단인 일해재단 모금에 대기업을 동원해 598억원을 거둔 일도 대표적 정경유착 사례로 꼽힌다.

정치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주요 그룹은 율곡사업 등 국책사업이나 각종 인허가 등에서 특혜를 받았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도 이때 본격화했다. 전두환정권 때에만 대기업 계열사가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반대로 정권에 비협조적인 기업은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됐다. 대표적 사례가 당시 재계 7위였던 국제그룹이다. 부산에서 고무신 사업으로 시작해 화학, 섬유, 건설, 종합상사 등을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국제그룹은 1985년 2월 21일 부실기업이라는 이유로 전면 해체됐다. 21개에 이르는 계열사는 청산되거나 다른 기업에 합병됐다. 국제그룹이 사업 확장 과정에서 무리하게 차입을 한 게 원인으로 꼽히지만, 다른 대기업과 달리 불과 몇 주만에 해체를 전격 결정한 배경에는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은 일해재단 모금 등에서 정권이 돈을 요구할 때마다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4단체가 1981년 2월 27일 연 전두환 대통령 축하연. 전경련 제공

전두환정권은 1980년 당시 주요 수출기업 중 하나였던 동명목재의 전 재산을 빼앗고, 재산헌납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진실·화홰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8년에 “신군부가 동명목재 사주 등을 위협해 재산을 강제로 헌납받았다”고 28년 만에 진실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전두환정권은 산업 합리화라는 명분 아래 석유파동 등으로 성장 한계에 도달한 중화학공업의 비중을 축소하고 컴퓨터산업, 전자공업, 유전공학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산업정책 방향을 전환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중소기업중앙회은 23일 “고인은 대통령 재임 시절 중소기업 진흥 10개년 계획 추진, 유망 중소기업 1만개 육성, 중소기업 경영안정 및 구조조정 촉진법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양적 성장을 견인했다”고 평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인이 남긴 업적도 있지만,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상황에서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