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지옥’이라고 말했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전쟁을 선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 내전은 전면전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커졌다.
22일(현지시간)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2019년 이웃 에리트레아와의 오랜 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아머드 총리가 23일부터 직접 정부군을 이끌고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과의 전쟁에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아머드 총리는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금은 조국을 위해 순교자 정신이 필요한 때”라며 “전선에서 직접 군대를 지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국민을 향해 “전쟁터에서 만나자”고 촉구했다. 다만 어느 지역에서 전투에 참여하겠다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아브라함 빌레이 국방장관도 이날 “국군 전체가 내일부터 특별한 작전과 대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티그라이 내전은 지난해 구 집권세력인 티그라이와 2018년 집권한 아비 현 총리가 권력 다툼을 벌이면서 촉발됐다. 그동안 에티오피아 정부는 티그라이 내전을 합법적인 소탕작전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이번 성명에서 ‘법 집행’이 ‘전쟁’으로 바뀌었다. AP통신은 이에 대해 1년여간 진행된 내전의 ‘극적인 새로운 단계’라고 표현했다.
아머드 총리의 참전 배경에는 이달 들어 정부군이 수세에 몰린 상황이 반영됐다. TPLF는 다른 지역 반군 오로모 해방군(OLA)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하루 내 진격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에티오피아 정부는 6개월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티그라이 출신에 대해 검속하고 있다.
아머드 총리의 이번 선언은 과거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던졌던 ‘반전 메시지’와 상반된 행보로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그는 당시 “나는 흙바닥 참호 속을 기어서 평화를 향해 빠져나오며 전쟁의 추악함과 비극을 직접 목격했다. 전쟁은 모두에게 지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머드 총리를 노벨상 후보로 지명했던 아월 알로 영국 킬대 법학과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발표는 희생과 순교의 언어로 가득찼다”며 “이 전례없는 일은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티그라이 내전으로 이미 수천명의 사망자와 250만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민간인을 포함해 10만명이 희생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에티오피아는 인구가 1억1000만명에 달해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많고 90개 종족에 80개 언어가 있는 탓에 만약 전쟁이 본격화하면 주변국까지 인도주의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에서 에티오피아의 내전이 ‘아프리카의 뿔(에티오피아를 포함한 대륙 북동부)’ 지역 전체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