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지역 5월 단체, 시민단체 등은 23일 아무런 사죄나 뉘우침 없이 세상을 떠나 원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 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오는 29일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5·18기념재단과 5월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등 3개 단체는 이날 오전 11시 30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죽음이 진실을 묻을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들은 “전 씨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해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5·18을 유혈진압한 뒤 1980년부터 88년 초까지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며 “계속되는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과 사법부를 속인 전 씨는 반성과 사죄는커녕 회고록에서 5월 영령들을 왜곡하고 폄훼하면서 역겨운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전 씨는 (회고록 등에서) 5·18과 무관하다고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해왔다”며 “(고 조 신부에 대한 재판이) 대한민국 헌정사를 유린하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전 씨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역사적 심판이 되기를 기대해왔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념재단과 5월 단체는 “5월 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씨를 형사고발한 고 조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총칼로 광주시민을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전씨는 진정한 뉘우침과 사죄를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며 “3년이 넘도록 계속된 법정 다툼의 결심 판결을 앞두고 떠나 허망하다”고 밝혔다.
법률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군부 반란의 주역 전씨가 광주시민들에게 일말의 반성과 사죄도 하지 않고 사망한 것은 무책임하다“며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의미는 있지만, 법률적으로 5월 당사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죄에 대한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5·18 구속부상자회 조규연 회장은 “진정성 있게 사죄하는 유서라도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결같이 내란죄로 처벌받은 전 씨의 국가장이나 국립묘지 안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사면 여부와 관계없이 역사적 죄인인 그의 국가장 논쟁 등은 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교조 광주지부와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은 전씨의 죽음에 대해 국가장을 포함한 정부 차원의 예우와 지원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잇따라 발표했다.
전교조 광주지부는 “정부는 노태우 태의 과오를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학살자에 맞서 생명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온 시민들을 모독하지 말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광주경실련과 민주언론시민연합, YMCA,YWCA 등 20여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협의회 역시 성명에서 “헌정질서 파괴자 전두환의 국자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한다”며 “독재자의 재산을 몰수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5·18정신을 대한민국 헌법정신으로 담아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1월 여·야 합의로 츨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는 조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진상규명위는 이날 “전씨의 사망에도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신군부 핵심 인물들은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해달라”고 촉구했다.
5·18 당시 최초 발포명령자, 헬기사격, 집단학살, 암매장 등을 집중 조사해온 진상규명위는 전씨를 포함한 내란·내란목적살인죄 핵심 인물들에게 조사안내서·출석요구서를 발송하고 면담조사를 추진해왔다.
광주지역 일부 인사들은 광주를 총칼로 짓밟고 정권을 탈취한 5·17쿠데타 등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이미 내려졌다며 전 씨의 사죄 여부를 괘념치 않는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최영태 전 전남대 5·18 연구소장(전 전남대인문대학장)은 이날 “전씨가 주도한 쿠데타와 광주학살에 대한 심판은 1987년 6월 항쟁과 1990년대 사법부 1심 사형, 대법원 무기징역 판결로 이미 끝났다”며 “전 씨의 사과 여부는 사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 씨는 “전 씨에게 최초로 유죄판결을 한 것은 사법부 이전에 국민”이라며 “사형감인 그의 죄는 여전히 역사 속에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