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총기 든 폭동” 공분·논란, 전두환 생전 발언들

입력 2021-11-23 10:54 수정 2021-11-23 14:10
연합뉴스

23일 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군부 출신이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대통령으로 생전에 관련 발언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5·18 유혈 진압’ 피고인으로 처벌을 받은 이후인 2003년에도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뇌물수수 혐의에 유죄가 확정돼 2205억원의 추징금 납부를 명령받았을 때는 “예금자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버티기를 일관했다.

그가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에도 ‘5·18 사태는 폭동’ ‘고 조비오 신부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의 표현이 담겨 논란이 됐고, 이로 인해 이듬해 5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국민일보 DB

다음은 생전 고인이 남긴 발언들.

“김종필은 흠이 많고 경솔하며, 김영삼이는 아직 어리고 능력이 부족하고, 김대중이는 사상을 도무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1980년 1월 대통령 당선 전)


“국민 여러분, 아동유괴 살인에 대해서는 앞으로 무조건 이렇게 조치할 것입니다”(1981년 이윤상군이 주검으로 발견되자 범인의 사형판결 확정 후 열흘 만에 집행한 뒤 출연한 방송의 대국민 선언에서)


“나도 인간인데 동네북처럼 두들기지 마라. 노태우가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 나를 도청하다니 내가 빨갱이냐”(1988년 대통령 퇴임 후 백담사로 가기 전)

“…검사, 나 처음 재판받는데 어떻게 해야 해, 좀 가르쳐 줘. 재판에서 너무 날 다그치지 마”(1996년 2월 25일 비자금 사건 1차 공판 전날 한 수사검사에게)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되레 불안을 느꼈다.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1996년 2월 26일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게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1996년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 직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 아래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심판하고 있으나 현실의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역사를 자의로 정리하고 재단할 수는 없다”(1996년 8월 5일 비자금 뇌물수수와 12·12 사태 및 5·18 사건 등으로 기소된 재판에서 검찰의 ‘사형’ 구형 후 최후진술)

“지금 대통령께서 ‘역사 바로 세우기’운동을 하신다고 하는데 대통령 본인의 역사부터 바로잡으시길 바란다”(1997년 4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예금 자산이 29만원밖에 없다”(1997년 추징금 2205억원 중 532억원 납부 뒤)

“나 자신의 인권도 탄압받고 짓밟히면서 살아왔다. 내가 인내심이 있고 성질이 좋아 이렇게 살아 있지 다른 사람이라면 속병이 나서 제풀에 죽었을 것이다”(1999년 1월 13일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대통령 퇴임 후 심경 토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2003년 2월 KBS 인터뷰)

“기자들이 내 사진은 꼭 비뚤어지게 (찍는다). 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2008년 4월 9일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서)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2014년 8월 9일 연희동 자택에서 병상에 누워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도, 12·12와 5·17이 내 사적인 권력 추구의 출발점이라고 단정되고 있겠지만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낸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다”(2017년 4월 ‘전두환 회고록’ 서문)

“내가 광주에 내려갔다면 작전 지휘를 받아야 했을 현지 지휘관들만큼은 나를 만났거나 봤어야 했는데 그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2017년 4월 ‘전두환 회고록’)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2017년 4월 ‘전두환 회고록’)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