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옹호 아니지만 경찰도 직장인”글에 ‘직딩’들 분노

입력 2021-11-22 10:55 수정 2021-11-22 11:24
블라인드 캡처

“인천여경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경찰도 ‘직장인’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22일 현직 경찰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여경사건 개인적 견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일부다.

이 글의 작성자는 “사명감 물론 있어야 한다”면서도 “사명감 같은 추상적인 언어는 현실의 벽 앞에 부딪혀 본 경찰들만 공감하지 일반 시민은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며 경찰이 ‘인천 흉기난동 사건’에 부실 대응했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고 있는 것에 대해 여론과 다른 의견을 밝혔다. 여기에 대해 다른 블라인드 사용자들은 “자기 업무 놔두고 도망치는 직장인은 없다”며 대부분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작성자는 이날 올린 글에서 “현장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상황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경찰이 그 상황에서 도망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만 현장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 위급함을 설명할 수 없다”며 “그런 좁은 공간에서 (상대가) 칼을 들었을 때 두려움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좁은 빌라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작성자는 “영화에서처럼 총을 든다고 칼을 든 피의자가 순순히 두 손 들고 일어나겠느냐”며 “그건 미국에서나 가능한 상황이고. 총을 보면 더 흥분한 피의자가 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작성자는 2019년 1월 서울 강동구 암사역 인근에서 벌어졌던 ‘칼부림 사건’을 예로 들며 위기상황에서 총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경찰의 현실을 강조했다. 그는 “암사역 사건 때를 보라”며 “(당시) 그 학생이 커터칼 하나 들었고 거기서 총을 쓴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을 것이다. 학생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많이 출동했는데도 제압 못했다. 법률이 총을 쓰면 X된다고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맞지도 않는 테이저건이랑 삼단봉만 (쓴다)”며 “시민은 이해 못한다”고 항변했다.

작성자는 또 “이번 중국인 칼부림 사건(에서) 그렇게 칼 들고 저항하는데도 바로 총 못 쏘는 건 안 보이느냐”며 “그게 우리나라 법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삼단봉으로 죽어라 패다가 한 번 찔리는 게 낫지. 서로서로 누가 먼저 총 꺼내서 쏴주길 엄청 바랐을 것”이라며 “무슨 일이 터지면 그 사람이 독박을 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 2일 흉기를 든 중국인이 학원 인근에서 20분간 경찰과 대치하다 실탄을 맞고 제압된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작성자는 “이번 사건을 비난한 건 자유지만 그렇게 까내리는 것에 힘쓰기보다 당신들이 힘을 합쳐서 우리 공권력이 약한 것에 힘을 더 싣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며 “앞으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을 본 직장인들은 대부분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은 “직장인은 뭐 자기 일에 사명감 없이 일하는 줄 아느냐”며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블라인드 사용자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훈련하고 최소한의 대응은 했어야 한다”며 “사후 변명도 문제고 어쨌든 이번 여경사건은 쉴드(방어) 불가”라고 댓글을 달았다.

블라인드 캡처

한 공기업 직원은 “세월호 선장도 어쩔 수 없었다”며 이 글 작성자를 비꼬았다. “의사가 집도하다가 피를 봤다고 도망가느냐. 소방관이 불났다고 도망가느냐”고 꼬집은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직장인은 “사명감 없는 직장인이라니 치안유지라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일반 시민의 신뢰도 자체가 흔들리는 의견 아니냐” “아니길 바란다. 정말”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 글을 쓴 작성자는 비판 댓글에 “분명히 잘못한 것은 맞다. 논점을 흐리게 한 건 맞다”면서도 “현장에서 경찰에게 힘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렇게 여러분이 달려드는 걸 보면 현장에서 우리는 슈퍼맨 같다”고 토로했다.

이 글에는 다른 현직 경찰관들도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한 경찰관은 “이번 사건 경찰이 잘한 것 하나도 없으니까 되지도 않는 변명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자”고 지적했다. “눈치도 없느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나중에 하라”며 “분명히 잘못된 상황이 맞다. 아무도 이해하려고도 안 하는 말을 이성적인 척하면서 난 다른 관점에서 볼 거라며 왜 굳이 올리느냐”고 따지는 글도 있었다. 경찰관으로 보이는 다른 사용자는 “형 좀 이런 데서 글 좀 안 쓰면 안 되느냐”고 비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