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테니스 선수 펑솨이가 당국 고위간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뒤 사라졌다는 실종설을 계기로 여배우 판빙빙, 기업인 마윈 등 중국 유명인들의 실종 사례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목소리 등을 제기하거나 공산당에 찍혔다가는 순식간에 존재가 사라진다는 공포가 확산되는 것이다.
펑솨이는 지난 2일 밤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장가오리 전 중국 부총리가 2018년 은퇴한 다음 자신을 성폭행한 뒤 위력에 의해 오랜 기간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주장하는 폭로글을 올렸다. 그러나 해당 글은 20여분 만에 사라졌고, 이와 함께 펑솨이의 행방마저 묘연해졌다.
이에 세계 테니스계는 물론 미국 백악관까지 그가 안전하다는 증거를 대라며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19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는 펑솨이의 행방과 안전에 대해 검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성폭행 피해 목소리를 내는 자들을 침묵시키려는 중국의 관행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에 펑솨이가 스티브 사이먼 여자테니스협회(WTA) 회장에게 “나는 실종된 것이 아니고 단지 집에서 쉬고 있을 뿐이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소문들도, 내가 성폭행당했다는 의혹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번복 편지’마저 의심을 받자 21일 오전에는 펑솨이가 베이징의 유소년 테니스 대회 결승전 개막식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영상이 공개됐다. 중국 관영매체 편집인이 트위터에 올린 이 영상 속 펑솨이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여자프로테니스(WTA) 협회 대변인은 해당 영상이 펑솨이에 대한 협회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갑작스레 행방이 묘연해졌다 아무 설명 없이 돌아온 유명인 사례는 펑솨이가 처음이 아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지난해 10월 공개석상에서 당국의 정책을 비판한 뒤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전까지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해오던 그가 하루아침에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면서 실종설을 넘어 사망설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석달 뒤 마윈은 화상연설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고, 다시 그로부터 넉 달 후에야 항저우의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후 지난 9월부터 마윈이 농업시설을 시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보도가 간간이 나오더니 지난달 말에는 그가 홍콩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 현지 농업시설을 시찰하는 모습이 번듯한 사진과 함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실렸다. SCMP는 알리바바가 소유하고 있다.
SCMP 보도를 통해 마윈이 해외에 나가 중국 당국이 강조하는 농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이 알려진 것이다.
인기 배우 판빙빙은 2018년 이중계약에 의한 탈세 파문 이후 사라진 사건도 세계적 관심을 받았었다.
판빙빙은 이후 중국 세무당국의 비공개 조사를 받았고, 8억8000만 위안(약 1500억원)에 달하는 세금과 벌금이 부과됐다. 파문이 터지고 3개월 후 판방빙의 반성문이 공개되긴 했지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5개월이 더 지난 뒤였다.
드라마 ‘황제의 딸’과 영화 ‘적벽대전’ 등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자오웨이도 실종설에 휘말린 바 있다. 지난 8월 말 중국의 여러 동영상 사이트에서 그의 작품 검색이 차단되면서다.
당시 동영상 사이트 관계자들은 자오웨이의 작품을 삭제하라는 임시 통지를 받았다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대만 언론은 자오웨이가 8월 27일 프랑스 남부의 유명 와인 산지인 보르도 공항에 전세기를 이용해 도착했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며 프랑스 도피설을 전하기도 했다.
자오웨이는 상당한 자산가로 2014년에 알리바바 계열인 알리바바픽처스에 투자해 수천억원의 평가차익을 냈는데, 일각에서는 당국이 알리바바와 관련된 인물을 솎아내는 것과 자오웨이가 관련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2018년에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첫 중국 출신 총재인 멍훙웨이가 인터폴 본부가 있는 프랑스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는 10여일 후 중국 공안부가 뇌물 수수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며 소재가 확인됐다. 멍훙웨이는 2020년 초 법원에서 징역 13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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