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 과연 공정한가요?” 입시 현장 ‘절레절레’ [이슈&탐사]

입력 2021-11-22 00:07 수정 2021-11-22 00:07
수험생들이 지난 5일 재수종합학원인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교육부가 2019년 11월 발표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는 ‘조국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해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입시 특혜 의혹으로 여론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은 9월 초 대입제도 재검토를 주문했다. 교육부가 숙의과정을 거쳐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을 발표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개편안에서 교육부는 2022학년도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정시 전형을 30% 이상 확대하기로 했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문 대통령 주문 3일 뒤 정시 확대에 대해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으로 불평등과 특권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후 두 달 만에 학생부종합전형 선발 비율이 높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2023학년도까지 수능 위주 전형으로 40% 이상 선발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수험생이 한날한시에 치르는 수능 위주 선발 비율을 늘리고 부모 능력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수시 선발 비율은 줄이겠다는 설명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현장의 평가는 어떨까.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19년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10명 중 7명 ‘공정한 방향 아냐’

국민일보 취재팀은 고교 진학담당 교사 모임인 전국진학지도협의회에 의뢰해 지난 1~8일 현 대입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구글 설문지를 이용한 조사에 고교 교사 236명이 응했다. 수도권 교사 77명, 비수도권 교사 159명이었다.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이후 정부 취지대로 입시가 공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교사 70.3%(166명)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중복응답 가능)로는 ‘고소득, 수도권 학생이 더 유리해지고 있다’(80.0%)가 가장 많았고, ‘재수생에게 더 유리해지고 있다’(71.8%)가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74.0%)에서 공정한 방향이 아니라는 응답이 비수도권(68.5%)보다 더 많았다.

공정성 강화 방안이 입시 결과의 지역별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질문에는 72.5%(171명)가 ‘수도권 학생이 더 유리해졌다’고 답했다. 수도권 교사 63.6%, 비수도권 교사 76.7%가 수도권 학생이 유리해졌다는 데 동의했다.


고교 교사들은 최근 재수생이 늘어나는 이유를 정시 비중 확대에서 찾고 있었다. 재수생 증가 원인을 묻는 질문에 57.6%가 ‘교육부의 정시 확대 기조 때문에’라고 답했다. 25.8%는 ‘학벌주의’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취업난 때문에’가 8.1%였다.

고교 정보 블라인드 평가는 ‘공정하게 작용하고 있다’(64.4%)가 ‘그렇지 않다’(35.6%)는 의견보다 많았다. 출신 고교 정보를 배제하는 이 제도는 학교 배경에 대한 후광효과를 차단한다는 목적으로 2021학년도부터 실시됐다. 수도권 교사 61.0%, 비수도권 교사 66.0%가 고교 정보 블라인드 제도가 공정하다고 답했다.


교사 77.1%는 정부의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으로 고교 현장이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중복응답 가능)로 ‘입시제도가 고교학점제 도입과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79%)를 고른 교사가 가장 많았다. 60.8%은 ‘학교교육이 다시 수능 과목 위주로 회귀하고 있다’고 답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직접 과목을 선택해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다. 2018년부터 논의됐고 2025년 모든 고교에서 본격 시행된다.

교사들은 대학 입시에서 가장 제거돼야 할 불공정 요소로 ‘소득계층에 따른 불공정’(38.6%)을 가장 많이 골랐다. 설문조사 의견을 종합하면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 2년이 지났지만 고교 현장은 혼란스러워졌고 입시는 공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 서술형 자유 응답에서 한 교사는 “수능 확대가 진정 공정한 제도라고 생각하는지, 공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책 바꿔도 사교육 줄지 않아”

‘조국 사태’에서 학종에 대한 불신이 커진 이유는 부모 영향력과 사교육으로 더 좋은 성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능은 다를까. 차정민 중앙대 입학사정관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슬기씨는 학종과 수능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사교육 패턴을 비교·분석한 논문을 올해 초 한국교육사회학회 학술지 ‘교육사회학연구’에 실었다. 학종이 수능에 비해 사교육을 더 부추기고 유발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다.

한 수험생이 지난 18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책상에 엎드려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두 사람은 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서울 소재 A대학 2018학년도 입학생의 ‘사교육 경험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학종 집단은 1학년 때부터 교과·내신 사교육에 집중하다가 3학년부터 비교과·자기소개서·수능·논술로 사교육 참여가 분산됐다. 수능 전형 집단은 1학년 때에는 수능·교과·내신 사교육을 고루 활용하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능과 논술 사교육에 집중했다. 두 집단 모두 시기와 종류가 달랐을 뿐 사교육 참여 빈도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특정 전형이 사교육을 더 유발할 것이라는 가설은 적절하지 않다”며 “대입 전형 방식이나 정책을 바꾼다고 해서 획기적인 사교육 경감 효과를 기대하기란 요원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의 2019년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해선 “수능 전형이 확대되면서 고교 3학년과 재수 시기에 동원되는 사교육 시간과 비용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히 재수생 증가까지 야기한다면 사교육 시간이나 비용의 양이 지금보다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사람 논문에는 전형별 입학생의 특성이 다르다는 사실도 나타났다. 학종 집단은 대부분 고교 3학년생(91.6%)이었고 10명 중 8명이 서울 외 지역 고등학교 출신(82.6%)이었다. 반면 수능 전형 합격집단의 절반 이상(57.8%)은 재수생이었고 33.3%가 서울 고교 출신이었다. 정시 전형을 확대하면 서울 출신 재수생 비율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육에 ‘공정’ 프레임은 타당한가

취재팀 설문조사에서 교사 대부분이 공감한 것은 ‘현 교육과정과 정시 위주 선발 정책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설문조사 자유응답 가운데는 앞으로 도입될 고교학점제와 정시 확대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교사는 “수능 중심의 입시 정책이 다양한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중시하는 고교학점제와 반대로 가고 있다”며 “대입 개편 없는 고교학점제의 성급한 도입으로 학교 현장의 대혼란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한 입학사정관은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정시 확대가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시 비중이 올라가자 반수를 해서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려고 중도 탈락하는 학생 수가 크게 늘어 학교에선 난리”라며 “현장에서 보면 진짜 대학 서열화의 주범은 수능이다. 대학 서열을 없애겠다던 정부 목표와 반대되는 ‘정책의 엇박자’”라고 지적했다.


교육계 인사들은 수년 전부터 취업시장에 등장한 ‘공정’ 프레임을 교육문제에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고교 교사는 “공정성이라는 족쇄가 학생들을 문제풀이 교육으로 내몰고 있다”며 “교육의 바른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경호 경기도 용인외대부고 입학부장은 “점수화하는 방식이 아니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과 체제가 무너지지 않으면 입시철마다 슬럼화되는 학교의 모습은 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교사는 “단순히 공정과 불공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며 “전형별로 뚜렷한 장단점이 존재하므로 각각의 단점을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 입학제도를 결정할 때 교육적 타당성, 선발의 공정성, 대학의 자율성 세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치적 고려를 바탕으로 교육의 방향을 틀어버리니 부작용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배 교수는 “정시와 수시의 비율을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출발점이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평가할 것인지 등 교육의 목적을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박세원 이동환 권민지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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