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친체로 신공항, ‘K-기술’ 만나 마추픽추 새 관문으로 거듭난다

입력 2021-11-21 09:00
지난 18일(현지시간) 페루 쿠스코주 쿠스코시에 위치한 쿠스코공항의 모습. 짐을 찾는 벨트와 공항 출구가 맞붙어 있어 짐을 찾자마자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쿠스코(페루)=정진영 기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천장과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벽면, 고개를 얼마 돌리지 않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 ‘국제공항’보다는 고속버스터미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것도 아주 한적한 지방의 고속터미널.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에 고개부터 갸웃거리게 되는 이곳은 페루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적 관광지 마추픽추 여행의 관문인 ‘벨라스코 아스테테 국제공항’이다. 페루 쿠스코주 쿠스코시에 위치해 있어 편히 쿠스코공항이라 부른다.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방문한 쿠스코공항은 코로나19 이전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던 마추픽추의 관문 공항이라 불리기엔 그 규모가 명성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쿠스코공항의 수용능력은 연간 170만명이지만, 2018년 기준 쿠스코공항을 찾은 방문객은 376만명에 달했다. 수용능력의 2배를 넘은 것이다. 무엇보다 공항 밖 주차장의 담벼락 뒤로 주르륵 이어진 집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항과 주거지역 사이 거리가 너무 가까워 소음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야간비행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친체로 신공항이 들어설 부지에서 토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 공항사진기자단

지난 4월, 쿠스코주 친체로시의 광활한 초지에서는 마추픽추의 새로운 관문이 될 ‘친체로 신공항’을 위한 토공사(구조물 시공 전 땅을 깎거나 다지는 작업)가 시작됐다. 쿠스코 주민들이 40년간 바라온 숙원사업이 드디어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지난 19일 찾은 친체로 신공항 부지에서는 트럭과 굴착기, 롤러 등 중장비 110여대와 기술자 및 노동자 1500여명이 투입돼 토공사 작업이 분주히 진행되고 있었다. 초록의 풀이 있던 자리에는 붉은색의 흙이 드러나 높낮이가 다르게 평평히 다져지고 있었다. 여객터미널과 활주로, 계류장, 주차장 등이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공항 부지는 쿠스코공항(해발고도 3200m)보다 600m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대지가 훨씬 평평했고, 사람이 사는 집도 쿠스코보다는 눈에 띄게 적었다. 덕분에 공항 부지가 쿠스코공항의 2배 크기로 조성되는 게 가능했다. 친체로 신공항은 쿠스코공항의 한계점을 보완한데다 마추픽추까지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권덕우 현대건설 현장소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토공사는 전체 공정의 45%가 진행됐다. 토공사는 내년 7월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후안 프란시스코 실바 페루 교통통신부 장관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쿠스코 주정부청사에서 진행된 친체로 신공항 건설사업 본 공사 착공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19일 쿠스코 주정부청사에서 진행된 친체로 신공항 사업의 본 공사 착공식에선 신공항에 대한 페루 정부의 기대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후안 프란시스코 실바 페루 교통통신부 장관은 이날 착공식에서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친체로 신공항 사업을 시작하는 축제의 날”이라며 “이 사업은 100만명 이상에게 혜택을 줄 것이고, 직·간접적인 일자리도 창출하며 쿠스코와 페루 남부 지역의 발전 및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체로 신공항 사업은 여러 번 초석을 놓았지만 그때마다 문제가 생겨 중단돼왔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 사업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사업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이날 착공식에는 장 폴 베나벤테 쿠스코 주지사, 주종완 국토교통부 공항정책관,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쿠스코 및 페루 정부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친체로 신공항은 오는 2025년 9월 개항이 목표다. 연간 수용능력은 570만명, 탑승교(공항과 비행기 사이를 잇는 다리)는 11기 규모다. 공항 크기로 치면 제주공항 정도다. 여객수용 규모나 공항 크기가 쿠스코공항보다 2배 이상 커지는 만큼 기존엔 국내선만 가능했던 게 친체로 신공항에서는 국제선 직항 노선도 운항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친체로 신공항 부지에서 PMO 사업의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친체로 신공항 건설사업은 국내 최초의 공항건설 PMO(사업총괄관리) 사업 수주이며, 공항 분야 최초의 G2G(정부 간 계약) 사업 수주라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2019년 11월 민관협력 ‘팀 코리아’ 컨소시엄을 구성해 스페인, 캐나다, 영국, 프랑스, 터키 등을 제치고 페루 정부와 PMO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 기업이 우리 기술로 만든 스마트 공항을 남미 지역으로 진출시키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공항공사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글로벌 해외사업 진출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손 사장은 “페루에 오기 전 다울 마뚜떼 메히아 주한 페루 대사가 ‘알라스 이 부엔 비엔또(Alas y buen viento)’라고 말해줬다”며 “‘날개와 순풍’을 의미하는 이 말처럼 친체로 신공항 건설사업이 좋은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쿠스코(페루)=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