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상장 1호, 교보생명 유력’(2007년 4월 28일, 한 중앙일간지 기사 제목)
2000년대 생명보험사들이 본격적으로 상장을 준비할 때 교보생명은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다. 교보생명은 국내 생명보험사 최초로 상장을 전제한 자산재평가를 시도할 만큼 기업공개(IPO)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각종 대내외적 이유로 상장은 번번이 무산되거나 연기됐다.
교보생명은 2018년 말 IPO 추진을 공식화했지만 재무적투자자(FI) 어피너티 컨소시엄과의 분쟁으로 또 멈췄다. 30여년 간 상장에 실패해온 교보생명은 지난 17일 내년 상반기에 IPO를 하겠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연말까지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계획이다.
교보생명의 ‘상장 잔혹사’
한국금융학회의 ‘생보사의 기업공개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1989년 3월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 생명보험사가 상장이 가능한지 질의해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교보생명은 그해 생보사 중 처음으로 자산재평가를 하며 IPO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1990년 12월 침체된 증시와 부정적인 사회 여론 등을 고려한 정부는 유보로 방향을 바꿨다.
2007년 금융감독위원회가 생보사 상장 규정을 승인한 후 교보생명은 유력한 ‘1호 상장사’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최대 주주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급하게 상장할 계획이 없다”고 부인했다. 신 회장은 대신 2012년 어피너티·IMM·베어링PE·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된 어피너티 컨소시엄을 FI로 영입하며 투자를 받았다. 어피너티는 교보생명 지분 24%를 인수하면서 2015년 9월까지 상장하지 못할 경우 풋옵션(보유한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업황 악화와 저금리 등에 어려움을 겪은 교보생명은 기한 내 상장에 실패했다. 수차례 상장이 보류되자 어피너티는 2018년 주당 40만9000원의 풋옵션 행사에 나섰다. 교보생명은 뒤늦게 IPO 추진을 공식화했지만 신 회장과 어피너티의 분쟁은 국제상공회의소(ICC)로까지 번졌다. 상장은 자연스레 기한 없이 미뤄졌다.
지난 9월 ICC 중재법원은 “풋옵션 계약은 유효하지만 교보생명이 어피너티의 행사가격에 매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 대주주 간 분쟁이 일단락되자 교보생명은 IPO 재추진에 나섰다.
“상장만 하면 곤두박질치는 생보사”… 교보증권은?
삼성생명·한화생명과 함께 생보사 ‘빅3’로 꼽히는 교보생명은 이들 중 유일한 비상장사다. 경쟁사들은 교보생명이 IPO에 어려움을 겪는 새 치고 나갔다. 2009년 동양생명을 필두로 삼성·한화생명(2010년), 미래에셋생명(2015년) 등이 줄줄이 증시에 데뷔했다.
그러나 상장된 생보사들의 주가는 공모가보다도 한참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공모가는 각각 11만원, 8200원이었지만 19일 기준 종가는 6만4800원, 3245원에 불과하다. 상장 당시 삼성생명의 시가총액은 20조원을 넘겼지만 지금은 12조9600억원이다. 업계에서는 “생보사들은 상장만 하면 주가가 곤두박질친다”며 가치가 저평가돼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이 IPO에 성공하면 전체 생보사 주가가 동반 상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준금리가 상승 추세로 돌아선 것도 교보생명에는 유리한 환경이다.
다만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 등은 생보사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021년 보장성 신계약이 두 자릿수 이상 감소해 전체 수입보험료의 둔화를 야기하고 있다”며 “신규 판매는 내년에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