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풀어보니, 한국인도 틀립니다 [한국인의 자격, 귀화 시험①]

입력 2021-11-20 06:00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의자에 앉으며 “아이고~” 소리를 내거나 뜨겁고 얼큰한 국밥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할 때가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는 흔히 “한국 패치 100% 완료” “한국인 다 됐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인의 언어습관과 사소한 일상 문화를 꿰뚫고 있다 해서 진짜 한국인이 되는 건 아니다. 한국 정부가 공인하는 ‘찐’ 한국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귀화시험’이라는 관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에 합격한 뒤 최종 면접심사를 통과해 ‘귀화시험 합격’ 통보를 받아야 비로소 한국인의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인턴 기자 5명이 귀화 시험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봤다.

귀화시험은 국가가 공인하는 ‘한국인의 자격’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최근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와 결혼한 일본인 가수 ‘강남’이 유튜브에서 귀화시험 필기전형 불합격 소식을 전하면서 이 시험의 난이도에 누리꾼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한국인이 될 조건’을 갖췄는지 따져보는 귀화시험에는 어떤 문제가 출제되고, 그 난이도는 어느 정도일까? 인턴기자 5명이 실전처럼 60분 동안 모의고사 40문항을 풀어봤다. 객관식과 원고지 200자 분량으로 쓰는 작문 문제가 포함돼있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득점을 해야 합격이다.

한국인이 틀린 귀화 시험 문제만 모아 모아
※시대고시기획 출판사의 동의를 받아 『2022 사회통합프로그램 종합평가 실전 모의고사』 문제 일부분을 발췌했다.

인턴 기자 5명이 귀화 시험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봤다.

필기시험을 치른 인턴기자들의 평균 성적은 92점, 약 4문제 정도 틀렸다. 이렇게 이들은 모두 한국인으로 판명됐다.

총평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난이도이지만 일부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다”로 요약된다. 여러 문항 중 아래 두 문제처럼 초·중등 교육기관과 보육 교사 관련 최신 정책 동향을 묻는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인턴 기자들의 모의고사 시험에서 오답률이 높았던 문제를 발췌했다. 두 문제의 정답은 모두 1번

시대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 뿐 아니라 자녀가 없어 관심 밖 사항이다 보니 오답률이 높았다. 인턴기자가 풀기에 까다로운 문항이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거나 키울 계획인 귀화 예정인에게 꼭 필요한 정보임엔 틀림없어 보였다.

한국의 역사와 지리 등을 다룬 문제는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 나오는 것과 유사하게 출제됐다. 한국의 역사 상식부터 지리 문제까지 생각보다 넓은 범위의 지식을 묻는 문제가 여럿 등장했다. 한국인도 평소 상식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틀릴 수 있는 것이다.
인턴 기자들의 모의고사 시험에서 오답률이 높았던 문제를 발췌했다. 정답은 3번.

정답을 찾는 게 어렵진 않았지만 지문의 내용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느껴지는 문제도 더러 있었다. 아래 모의고사 14번 문제는 한국에서의 회식 문화에 대해 묻는 내용으로 정답은 1번이다. 앞뒤 문장의 인과 관계를 추론해서 답을 고르는 문제이지만, 내용면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회식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답변이 쉽게 수긍되진 않을 수 있다.

그 다음 모의고사 23번 문제는 한국인의 직장 생활 관련 문항으로 정답은 3번, ‘사회적인 성공보다 개인의 행복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이다. 하지만 이밖에 ‘높은 연봉을 받는 것만 성공이라고 여긴다’는 보기 문항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자면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정답을 고를 수도 있다. 아래 문제 속 한국인의 회식 문화나 직장생활에 동의하는 한국인이 과연 많을까.

오답률은 높지 않았지만 본문 내용에 논란이 일 것 같던 문제. 정답은 14번-1번, 23번-3번

필기시험이 끝나면 구술시험이 10분간 진행된다. 최신 구술시험에서는 ‘한국이 통일되면 좋을까요, 나쁠까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이혼할 때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 ‘미운 정 고운 정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지붕의 재료에 따른 한옥의 종류를 설명해 보세요’ 등 선뜻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 출제되곤 했다.

2018년 발간된 ‘이주민 대상 한국어시험의 맥락 타당도 연구’ 논문은 귀화시험의 문제 수준 및 의미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 논문의 대표 저자 오승영 교수는 “이주민 대상 한국어시험이 맥락 타당도를 확보하기 위해서 시험이 현실 세계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생활과 밀접한 시험 내용을 통해 수험자들이 이 시험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다양성연구원의 강현주 대표는 “실제로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은행 계좌 개설, 병원 진료 절차, 한국인 자녀교육법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귀화시험의 필기시험 문항은 한국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실생활 적용이 가능한 문제로 구성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귀화시험’, 넌 대체 누구냐?

사실 ‘귀화시험’은 편의상 부르는 명칭일 뿐 정식 이름은 따로 있다. 바로 ‘사회통합프로그램 귀화용 종합평가’다. 2018년 2월 개정된 국적법 시행령이 시행되면서 ‘귀화 필기시험’이 사회통합프로그램 종합평가로 대체된 것이다.

보통 귀화시험을 치르는 이민자는 한국 생활에 필요한 한국어·경제·사회·법률 등 기본 소양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 과정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한다. 0~5단계로 이뤄진 이 프로그램은 이수하는데 총 515시간이 소요된다. 법무부는 사회통합프로그램 교육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수한 사람이면 충분히 종합평가에 합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통합프로그램 과정 및 이수시간. 법무부 제공

2018년 9월 1일 전까지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자만 종합평가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아도 귀화용 종합평가에 응시 가능하다. 다만 면접심사 면제, 국적심사 대기 기간 단축 등의 혜택에서 제외된다.

귀화 종류에 따라 국적 취득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조금씩 달라진다. 귀화는 크게 일반귀화와 간이귀화, 그리고 특별 귀화로 나뉜다.
일반귀화, 특별귀화, 간이귀화에 대한 설명.

특별귀화나 간이귀화 대상이 아닌 외국인은 대부분 일반귀화에 해당한다. 일반귀화를 하기 위해서는 5년 이상 계속해서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어야 하며 민법상 성년이고 생계유지 능력이 있어야 한다.

특별귀화는 부 또는 모가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인 사람,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 등에 해당하는 귀화 방식이다. 일반 귀화에 요구되는 5년 이상의 거주나 생계유지 능력 등의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간이귀화는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사람 등 우리나라와 특별한 혈연적·지연적 결합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귀화 방식이다. 특히 혼인에 의한 간이귀화의 경우 귀화용 종합평가가 면제돼 면접심사만 준비하면 된다.

귀화 시험, 누가 누가 신청하나

2009년부터 귀화 신청자 수는 꾸준히 1만명대 중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의 귀화시험 응시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이다. 귀화시험은 외국인이 귀화 허가를 신청한 날로부터 1년 이내, 최대 3회까지 응시할 수 있다.

실제 2018년 3월부터 올해 9월 말까지 귀화를 신청한 사람 중 종합평가 및 면접심사에 응시한 사람의 수는 총 5만3265명으로 집계됐다. 2018년 3월~ 올해 9월 말까지 귀화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평균 필기시험 70.6%, 면접 59.7%의 합격률을 보였다.

귀화 신청자들의 연도별 국적 비율. 법무부 제공

귀화 신청자의 국적 비율은 중국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중국에서 귀화를 신청한 사람은 8343명으로, 2020년 전체 귀화자 1만6529명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다음으로 베트남(5893명)이 뒤를 이었다.

귀화 형태별로는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을 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자 하는 혼인귀화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2020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도 전체 귀화자 중 한국인과의 혼인을 통한 간이귀화자(혼인귀화자)가 48.4%에 달했다.

김미진 인턴기자
노혜진 인턴기자
박채은 인턴기자
천현정 인턴기자
한제경 인턴기자

[한국인의 자격, 귀화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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