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부터 멈칫…역대급 ‘불불불수능’ 얼마나 어려웠길래

입력 2021-11-19 16:04 수정 2021-11-19 16:13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영역 1번 문제. 1번 문제는 보통 쉽게 출제되는데, 수험생들은 이번 수능의 경우 1번 문항부터 쉽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험생들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1교시 국어 영역에서 생소한 주제의 비문학 지문이 여럿 출제돼 수험생들의 혼을 쏙 빼놓은 데 이어 2교시 수학 영역에서도 깐깐한 문제가 적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이어진 3교시 영어 영역에서도 높은 수준의 어휘가 사용된 지문이 나와 진땀을 뺐다는 이들이 많았다.

수험생들은 19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난도 수능 문항에 대한 하소연을 쏟아내며 수능 성적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 이들은 “재필삼선(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딱 맞다. 너무 어려웠다” “1번 보고 뇌가 3초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재수를 왜 했을까. 작년에 대학 갈 걸 그랬다” 등 고난도로 출제된 이번 수능에 적잖이 좌절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어와 수학이 어려워 역대급 불수능으로 불렸던 2019년도, 2011년도와 맞먹을 정도로 어려웠다는 수험생들의 평가도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일부 캡처

특히 수학의 경우 이전처럼 이과 학생과 문과 학생이 각각 가·나형을 푸는 게 아닌 통합형 시험을 치르게 돼 상대적으로 수학에 약한 문과 학생들이 고전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문과 수험생들은 “제발 가·나형을 돌려달라” “정말 ‘문송하다’(문과라 죄송하다)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수험생들을 좌절에 빠뜨린 국어·수학·영어 영역의 문제 몇 가지를 모아봤다.

‘헤겔 미학’과 ‘브레턴우즈 체제’?…"한국말 맞나요"

국어 영역에선 독일 철학자 헤겔의 미학을 주제로 한 비문학 지문이 대표적인 ‘킬러 문항’으로 꼽혔다.


해당 지문을 보면, “헤겔에게서 절대정신의 내용인 절대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직관의 외면성 및 예술의 객관성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감각적 지각성이다” “변증법에 충실하려면 헤겔은 철학에서 성취된 완전한 주관성이 재객관화되는 단계의 절대정신을 추가했어야 할 것이다” 등 고교생에겐 낯선 철학 개념과 어휘가 사용된 문장이 많았다. 수험생들이 시험장에서 빠른 시간 내에 읽고 이해하기엔 어려웠을 만한 내용이다.

1945년 이후 국제 경제의 통화질서를 의미하는 ‘브레턴우즈 체제’와 기축통화국의 만성 적자가 필연적임을 지적하는 경제학 개념인 ‘트리핀 딜레마’를 주제로 한 비문학 지문도 고난도 문항으로 꼽혔다. 국제 거시경제에 관심 없는 이들이라면 처음 들어봤을 개념이기 때문이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2차대전 이후 연합국들이 구축한 국제 통화 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삼고 고정환율제를 도입한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은 국제 경제에 통화를 공급하기 위해 교역에서 항상 적자를 봐야 하는데, 이럴 경우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할 수 있다는 모순이 생긴다. 경제학에선 이런 모순을 ‘트리핀 딜레마’라고 부른다. 이 지문 역시 고등학생들에겐 어려운 내용일 수 있다.

“1번부터 멈칫했다” 수학 영역…영어 “한국어로 읽어도 어려운 내용”

수학 영역은 “1번부터 당황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지금까지 1번 문항은 ‘한쪽 눈을 감고도 풀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주 쉽게 출제됐는데, 이번 수능 수학 영역의 1번 문제는 생각보다 까다로워 계산 실수로 틀렸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난도 문제로 지목된 15번은 삼각함수를 활용한 코사인 법칙과 원주각의 성질을 이용해 풀어야 하는 빈칸추론 유형의 문제다. 수능에 앞서 진행된 6월과 9월 모의고사에서 이와 같은 빈칸추론 유형은 출제되지 않았다. 또 삼각함수를 활용한 문항도 쉽게 나왔던 터라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가 더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본 누리꾼들은 “문제를 끝까지 다 읽지도 못하겠다” “이런 걸 공교육에서 다루긴 하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영어 영역 지문도 어휘 수준이 높고 문장 구조가 복잡해 애를 먹었다는 후기가 많았다.

수험생들이 대표적 고난도 문제로 꼽은 홀수형 34번 문항의 경우 과학 지식과 역사학적 통찰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게 요지다. 과학 분야가 정확하고 확실한 진실 또는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라면, 역사학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지식을 의문시하며 새롭고 대안적인 가설을 세우는 게 더 가치 있다는 얘기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차이를 설명한 지문이었던 셈인데 많은 수험생은 “해설을 봤지만, 한국어로 들어도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출제위원장 “예년 수준” 브리핑에…수험생 “너무 얄밉다”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가 높아지면서 출제위원들을 향한 원성도 터져나왔다. 앞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장인 위수민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는 18일 브리핑에서 “예년의 출제 기조를 유지하고자 했다”며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출제했다”고 밝혔다. 이전과 비교해 특별히 어렵게 출제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이렇게 어려운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말도 안 된다” “너무 얄미워서 딱밤을 때리고 싶다” 등 수험생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교육 당국에 불만을 드러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노혜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