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층간소음 갈등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서 부실 대응 논란을 빚은 남녀 경찰관 2명이 대기발령 조치됐다. 여경이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현장에서 이탈한 사이 흉기에 찔린 피해자는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그간 수차례 논란이 일었던 ‘여경 무용론’이 재차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특정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를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인천경찰청은 논현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A경위와 B순경을 대기발령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15일 오후 4시50분쯤 인천시의 한 빌라에서 주민 C씨(48)가 소란을 피운다는 3층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C씨를 4층으로 이동하게 했다. 이후 A경위는 빌라 밖에서 신고자 D씨의 피해 진술을 받았고 여성인 B순경은 3층에서 D씨의 아내와 딸과 함께 있었다.
4층으로 올라갔던 C씨는 갑작스레 3층으로 내려와 흉기를 휘둘렀다. B순경은 C씨를 제지하지 않고 지원 요청을 한다는 이유로 현장을 이탈해 1층으로 내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1층에 있던 D씨는 가족의 비명을 듣고 3층으로 올라갔는데 A경위와 B순경은 공동현관문이 닫히면서 내부로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다른 주민이 비밀번호를 입력해 문을 열어줘 3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경찰이 현장에 없는 상황에서 D씨 혼자 C씨를 막아 서야 했다. C씨가 흉기를 휘둘러 D씨의 아내는 목 부위를 찔리는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D씨 아내는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D씨 가족은 경찰이 범행 현장을 벗어나 피해가 커졌다면서 경찰의 소극적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C씨는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D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아내가) 뇌가 손상이 됐다. 식물인간 될 확률이 90% 넘으니까 (의료진이) 그렇게 생각하시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인천경찰청은 18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송민헌 인천경찰청장은 “시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은 인천경찰의 소극적이고 미흡한 사건 대응에 대해 피해자분들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현재까지 자체 확인 조사된 사항을 토대로 추가 철저한 감찰조사를 통해 해당 직원들에 대해 엄중히 그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천경찰청은 이날 “도망간 여경이 칼부림 가해자에게 테이저건도 빼앗겼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에 대해 “경찰이 테이저건도 있었으면서 현장을 이탈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여경 무용론이 재차 불거지면서 젠더 갈등으로도 비화하고 있다. 여경 무용론은 범죄 현장에서 여경의 범죄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취지의 주장을 담고 있다. 앞서 시위 중인 여성 1명을 여경 6명이 달라 붙어 막는 동영상, 여경이 남성 주취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영상 등이 퍼지면서 이 같은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경의 체력검사 기준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경찰은 채용시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체력검사 기준을 적용하는 개선안을 내놓기도 했다. 남녀통합선발 체력검사는 2023년부터 경찰대학생, 간부후보생 선발 과정에 우선 도입되고 2026년부터는 모든 경찰 선발 과정에 전면 도입된다.
다만 이번 흉기난동 사건에서 특정 경찰들의 부실 대응 문제를 여경 전체의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 흉기를 든 범죄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거나 부실 대응으로 논란이 되는 사례는 남성 경찰들에게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음식점 주인이 흉기에 찔렸는데 남성 경찰이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 현관 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피해자 가족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남성 취객이나 흉기를 든 성인 남성을 혼자 제지하는 것은 남성 경찰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라 단순히 남여 문제로 보긴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사건에서 남성인 A경위도 피해자 비명이 들렸을 때 곧바로 건물 내부로 진입하지 않는 등 대처가 늦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찰 장비의 현대화, 여경에 대한 교육 강화, 총기 사용 등 현장 대응 능력 강화 등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