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vs ‘허위사실’…최강욱·이동재 누구 말이 맞나

입력 2021-11-19 00:02 수정 2021-11-19 00:28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 대표(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님,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주었다고 해라.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4월 3일 페이스북에 ‘편지와 녹취록상 채널A 이동재 기자 발언 요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앞부분이다. 이 글에 언급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최 대표의 글이 허위라며 2억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최 대표는 이 글로 인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연합뉴스

최 대표가 올린 글의 성격을 두고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선 이 전 기자 측은 이 글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사실’의 영역에 있다고 본다. 최 대표가 이 전 기자의 발언 요지라고 적은 내용은 실제로는 이 전 기자와 이 전 대표가 주고받은 편지·녹취록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이 전 기자 측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적었기 때문에 허위사실이라는 입장이다. 이 전 기자 측은 “기자의 인격을 말살하는 수준의 거짓말임에도 현재까지 그 글을 게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에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 최강욱 의원 태도에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다”며 손해배상 청구 금액을 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올렸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4월 3일 페이스북에 '편지와 녹취록상 채널A 이동재 기자 발언 요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 최 대표는 아직까지 이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최강욱 측 “진위 따질 수 없는 비평”

최 대표 측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최 대표 측은 앞서 “맥락과 배경, 사회·정치적 의미와 법적·윤리적 의미를 해석해 비평으로서 글을 게시했다”고 밝혔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의견’의 영역에 있다는 취지다.

최 대표 측의 보다 자세한 입장은 지난 17일 소송대리인 이창환 변호사의 페이스북에서 공개됐다. 최 대표 측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판사 이관용) 심리로 열린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에 불출석했는데, 이 변호사는 “갑작스럽게 생긴 소송대리인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석하지 못하게 된 것이고 소송절차 지연의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진 글에는 최 대표가 올린 발언 요지 성격에 대한 대리인의 법적 판단이 자세히 담겼다. 이 변호사는 “최 의원 게시글은 이동재 기자가 위법한 취재 과정에서 쓴 편지와 말에 대한 정당한 비평”이라고 규정했다. 최 대표는 이 변호사의 글을 공유하면서 “일방적인 보도에 대한 우리 변호사님의 답답한 마음”이라고 썼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그의 소송대리인인 이창환 변호사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이 변호사는 “비평에 대해서는 찬반이나 동의 또는 부동의와 같은 서로 다른 입장이 있을 수는 있어도 진위를 따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이 올린 글은 처음부터 의견 표명에 불과하니 형사상이든 민사상이든 문제를 삼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 변호사는 또 “이동재 기자도 공적 인물에 대한 이 정도의 비판 내지 비평을 해왔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이동재 기자도 취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한 이상 그에 대한 비판 내지 비평을 피해갈 수 없다”며 “손해배상 청구는 그런 비판, 비평을 피해갈 수 있는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대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취재윤리 위반 문제를 감안하면, 최 대표가 비판의식을 담아 작성한 ‘비평’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재판에서는 최 대표 측 주장대로 발언 요지의 성격이 ‘비평’인지, 아니면 이 전 기자 측 입장대로 ‘허위사실’인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사실 적시인지 의견 표명인지 여부는 명예훼손이 문제가 된 민·형사소송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따지는 법리적 쟁점이다.

대법원, ‘평균적 독자 관점’ 기준

대법원은 명예훼손 사건에 있어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 표명인지 구분할 때 “당해 표현의 객관적인 내용과 아울러 일반의 독자가 보통의 주의로 표현을 접하는 방법을 전제로 표현에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표현의 전체적인 흐름, 문구의 연결 방법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평균적인 독자의 관점에서 문제된 부분이 실제로는 비평자의 주관적 의견에 해당하고, 다만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시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일반인’이나 ‘평균적인 독자’의 관점이다. 최 대표의 글을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사실 적시인지 아니면 의견 표명인지가 핵심이라는 의미다. 또 하나 눈 여겨 볼 대목은 최 대표가 글을 작성하면서 쓴 ‘발언 요지’라는 문구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요지’란 단어의 의미는 ‘말이나 글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이다. 재판부가 이를 최 대표 측 주장대로 비평으로 해석하는지 여부에 따라 소송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앞서 이 전 기자는 신라젠 취재를 하면서 이철 전 대표를 협박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련 비위 제보를 받으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강요미수)로 지난해 8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1심에서 무죄를 받고 현재 항소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