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발동동 수험생, 구청장 시계 빌려 입실

입력 2021-11-18 11:52 수정 2021-11-18 14:10
박재범(노란색 상의) 부산 남구청장이 18일 오전 8시쯤 관내 용호동 분포고 정문 앞에서 시계를 지참하지 않아 난처한 표정을 짓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에게 다가가고 있다. 남 구청장은 자신의 아닐로그 손목시계를 학생에게 건넸다. 사진은 박 구청장의 동정과 시험장 풍경을 촬영하던 부산 남구 직원에 의해 촬영됐다. 부산 남구 제공

하나의 시험을 위해 관공서·기업의 출근과 증권거래소의 개장 시간을 오전 10시로 미루고 듣기평가를 진행할 때 비행기도 띄우지 않는 연중 단 하루. 입실 완료 시간을 앞두고선 경찰차, 택시, 배달 오토바이가 수험생을 실어 나른다.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은 이런 날이다.

2022학년도 수능이 시행된 18일 부산의 한 시험장에선 손목시계를 가져오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던 수험생에게 구청장이 자신의 것을 다급히 풀어 건네주는 풍경이 포착됐다.

상황은 입실 마감 시간을 10여분 앞둔 오전 8시쯤 부산 남구 용호동 분포고 정문 앞에서 발생했다. 부산광역시교육청 23지구 제11시험장인 이곳에 도착한 여학생 1명은 시계를 지참하지 않았다.

미세한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수능에서 학생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도움을 주지 못해 난처한 표정만 지었다. 학생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착용한 시계는 시험장으로 반입할 수 없는 전자시계, 혹은 모바일기기였다.

마침 그곳엔 이른 아침부터 관내 시험장을 이동하며 수험생을 응원하던 박재범 부산 남구청장이 있었다. 박 구청장은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다가가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수험생의 난처한 상황을 알아채고, 즉각 자신의 손목시계를 풀어 건넸다.

입실 마감이 다가오는 상황. 수험생은 박 구청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어떻게 돌려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박 구청장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시험에서 대박 나라”고 응원했다. 위기를 면한 수험생은 시험장으로 달려 들어갔고, 그의 모교 교사들은 박 구청장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박재범(노란색 상의) 부산 남구청장이 18일 용호동 분포고 정문 앞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박재범 구청장 페이스북

부산 남구 관계자는 “당시 분포고 정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안도하며 박 구청장에게 ‘잘하셨다’고 인사했다”며 “박 구청장의 시계를 빌려 간 학생이 좋은 소식을 전해오길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페이스북에 “새벽 순찰을 잠시 미루고 이날 시험장을 찾았다. 자신을 믿고 당당하게 하고 오라는 응원의 말을 수험생들에게 전한다”며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친구에게 내 손목시계를 빌려줬는데, 시험을 마치고 꼭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고 응원했다.

박 구청장의 페이스북 게시물 아래에는 “한국 수험생들 힘내라” “한국 학부모 모두 수고가 많았다”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