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독도 문제 제기한 일본 탓 공동 기자회견 무산

입력 2021-11-18 05:25 수정 2021-11-18 10:06

일본이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문제 삼아 예정됐던 한·미·일 외교차관협의 공동 기자회견이 무산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냉랭해진 한·일 관계가 국제무대에서 재차 노출된 셈이다. 대중국 견제를 위한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회복에 주력해 왔던 미국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17일(현지시간)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의 협의 후 오후 2시 10분쯤 국무부 기자회견장에 홀로 등장했다. 그는 “두 번째 3자 협의를 방금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한동안 그랬듯, 한국과 일본 사이에 계속 해결돼야 할 일부 양자 간 이견이 있었다. 이 이견 중 하나가 회견 형식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셔먼 부장관은 다만 “이날 회담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날 협의를 통해) 미국, 한국, 일본 간 긴밀한 협력이 기후 위기 퇴치, 청정에너지 및 인프라 투자,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권에 대한 헌신, 코로나19 종식 등 광범위한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앞서 국무부는 전날 한·미·일 차관이 이날 3자 회의를 가진 뒤 공동으로 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국무부는 한·미·일 3국 기자단에 회견 취재를 위한 풀(pool) 구성도 요청했었다. 그러나 기자회견 직전 공동회견 대신 단독 회견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최 차관은 “일측이 경찰청장 독도 방문 문제로 공동기자회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3자 회담 시작 전 전달해 왔다. 우리는 호스트인 미국이 단독 기자회견을 통해 차관 회의 내용을 공개하는 데 동의했다”며 “한·미·일 차관 협의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은 이후 진행된 한·일 외교차관 회의에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이날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는 지난 7월 이후 넉 달 만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강화를 추진하며 여러 차례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관계 개선을 요구해 왔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한 핵심 동맹으로 여기고 있다.

셔먼 부장관도 “우리는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3국 협력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또 “3자 회담은 3시간 이상 지속됐다. 우호적이고 건설적이며 실질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한·일 양국은 회의를 주재한 미국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인 셈이다. 한·일 갈등 노출로 3국 협력 강화 평가 역시 빛이 바랬다.

AP통신은 “이웃인 한국과 일본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과거사 문제,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물질 처리 문제, 무역 갈등 등을 언급했다. 이어 “그러나 이런 이견으로 북한에 대한 3국 단합이 취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셔먼 부장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으며,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정착 성취에 필수적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셔먼 부장관은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종전선언에 대해서 짧게 말하자면,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보장하기 위해 전진할 최선의 방법으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협의하고 있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종전선언에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북핵 수석대표 회동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밝혔다고 이달 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당시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반복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한국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달 말 종전선언과 관련한 질문에 “(한·미는)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 또는 시기, 조건에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최 차관은 지난 14일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종전선언 논의와 관련)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셔먼 부장관은 종전선언 이견 노출 등에 대해 “좋은 협의를 하고 있고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며 “우리가 서로 협의하고 조정할 때 항상 각 나라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이익을 보장하는 최선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생각하다”고 말했다.

셔먼 부장관은 또 “한국과 일본, 미국이 모두 미사일 발사로 북한에 제재를 부과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